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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윤 Mar 05. 2024

01. 별명

<90년생 나는 세상을 이따위로 이해하련다>


신혼생활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역시 부부 서로의 친구들을 알아가는 재미다. 나 같은 경우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기에 아내에게 내 고향 친구들을 소개해 줄 일이 많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의 경우 경상도에서 남중·남고를 나온 남편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내들끼리 특별한 유대라던가 우정이 만들어지기도 하더라. 그 과정에서 남편들(특히 나)은 그간 알지 못했던, 또는 잊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별명이다. 실제 가지각색 자기들 맘대로 나를 불러대는 내 친구들은 정작 이름으로 부를 땐 꼭 성과 이름을 같이 부른 후 욕을 추가하곤 한다. 정작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에겐 대부분 다정하게 이름만 부르면서 말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당시 경상도 10대들은 남자건 여자건 타인을 성 떼고 부르는 건 사귀자는 뜻이었다. 그 기원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내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또는 친구들이 떠난 후 문득 떠오른다면 내게 묻는다. ‘그 별명은 어떻게 생긴 거야?’ 평소 생각지 않던 별명의 기원에 대해 차근차근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이와 관련해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서로 지어주는 별명은 보통 거기서 거기다. 주로 멀쩡한 이름을 변형해서 부르거나, 외모적 특징을 따서 지어준다. 성이 ‘신’인 나는 90년대 후반 유년기에는 주로 신발장, 신밧드 같은 실없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후 2000년대에 들면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중·고도비만이란 이유로 ‘신뚱’이라 불렸다. 특이하게도 이 외모 비하 별명은 담임선생이 지어준 건데, 아이들 뺨에 손찌검을 하며 학부모들에게 상습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던 인간이라 지금 생각하면 그저 우습다.


그렇게 키와 덩치가 남달랐던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주로 거구의 프로레슬러들 링네임으로 불렸다. 프로레슬링이 특히 유행하던 때라 ‘빅쇼’나 ‘케인’ 같이 거구지만 딱히 미남이라거나 주인공 역할은 아닌 이들이 내 담당이었다. 나 역시 프로레슬링을 참 좋아해서 ‘절대 집에서 따라 하지 마세요’를 무시한 채 내 동생을 대상으로 수플렉스를 연습하다 오른팔이 똑 부러진 적이 있지.


이후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주로 ‘싱가’로 불렸다. 본인께서도 신씨 성을 가진 한국지리 선생님께서 내가 평산 신가 판사공파 34대손이란 사실을 아시고서 ‘신가야, 신가야’ 부르시던 것을 멍청한 놈들이 ‘싱가, 싱가’ 따라 부르다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내 인생 조각조각을 담당한 여러 명칭이 있었으나 시대 및 연령적 배경에 따라 너무 유치하거나 천박하기에 따로 소개하진 않겠다.




이렇게 학년마다 조금씩 추가 또는 변형을 지속하던 나의 별명은 대학교 진학과 함께 명맥이 끊겼다. 그렇게나 친구들 별명 지어주는 걸 좋아하던 나 역시 장기간 휴업에 들어갔고, 주변에서도 새 별명이 탄생하기보다 단지 과거의 별명이 재사용될 뿐이었다. 여전히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선 10대 때 친구들이 과거 별명을 재사용하고 있었기에, 이를 따라 불러보는 수준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나는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오직 이름만으로 친구들을 다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빡빡 밀은 머리, 매일 같이 입고 다니는 시커먼 교복과 푸르딩딩한 체육복, 하루 12시간 이상을 교실에 붙어 있으며 사실상 같은 것을 보고 듣는 우리에게 서로의 이름만으론 부족했지 싶다. 뭐라도 다른 점을 찾아 붙이고 불러 줘야 맛이 살았다. 애정을 담아서.


그러던 게 성인이 되고 나니 그저 이름 석자 만으로 너의 얼굴, 머리, 패션, 취향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네가 했던 말들, 평소 사고방식, 주량까지 네 이름에 다 쓰여있더라. 다만 직장 소속이 된 후부터는 다시 이름은 퇴색되고, 이번엔 그 자리를 직급이 차지했다. 적어도 나는 아무리 친한 직장 동료라도 새로 별명을 지어 불러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성에다 ‘선생’, ‘사장’을 붙여 부르는 정도?




아, 특별한 사례를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학창 시절 절친이 성인이 된 후에야 개명한 경우다. 이렇게 되면 10대 친구들은 옛 이름을, 그의 아내를 비롯해 직장 동료 등은 새 이름을 부르며 서로 어색해하는 재밌는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나는 여러 비과학적 근거의 영향을 받아 새 출발을 위해 새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는 주의지만, 매번 마치 별명을 부르듯 새 이름을 부르고 있더라. 뭔가 어색하면서도 우리만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하는 듯한, 찰진 별명의 맛이 새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다 또 술에 잔뜩 취하면 옛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방에라도 가면 얼른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예약한다. 2절부터가 하이라이트인데,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를 적절히 개사한다. OO(새 이름)의 다른 이름은 XX(옛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한참을 박장대소할 수 있기에 추천한다.


별명은 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너의 옛 이름을 기억하는 나는 너의 옛 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특별하다. 동시에 새 이름을 불러 너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 좋다. 딱히 개명을 장려하는 건 아니다. 개명 시 사용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공감하는 바 아니지만, 기왕 새 이름을 찾은 너를 나는 늘 응원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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