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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d River Jun 28. 2018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사랑은 역극성

자석의 성질은 참 특이하다. 같은 극은 지독하게 밀어내는 반면, 다른 극은 어떻게든 끌어당기려 하니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이상형과 연애관을 가졌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반하는 순간은 마음처럼 되지 않으며 이상하게도 자신과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을 뺏기곤 한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과 엠마(레아 세 이두) 의 대비에서도 역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또한 역설적이다. 가장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색이 파란색이라니? 일반적이지 않다. 과연 아델과 엠마 두 여인의 관계가 어떤 대비를 보이는지 영화를 통해 두고 볼 일이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평범한 고등학생인 아델은 불문학을 전공한다. 영화의 초반, 수업을 하는 장면에서 책을 읽으며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슴 한구석에 무언가 채워지는 것일까? 혹은 무언가 빠지는 것일까?’라고 질문하지만 한 학생을 제외하고 다른 학생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 하며 아델 역시 그렇다. 이후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머리를 배배 꼬는 장면에서 비유될 수 있다.) 데이트를 하러 가는 도중 ‘엠마’와 횡단보도에서 마주치게 되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불문학 선생님이 말한 무언가 채워지거나 혹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으리라. 
  
 엠마와의 조우 이후, 선배와의 데이트는 (극장에서 아델과 선배가 나눈 키스 장면에서 알 수 있듯) 감흥 없기만 하다. 데이트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간 그녀는 잠에 들기 전 자위를 한다. 엠마가 자신을 만지고 키스하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확신을(혹은 어떤 확인을 위해) 얻기 위해 선배와 섹스를 하지만 전 날 엠마를 상상하며 한 자위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선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녀는 선배와 헤어진 뒤 자신의 방에서 혼자 우는데 분명 이별의 아픔 보다 이러한 감정에(남들과 사랑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 따른 혼란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어지는 수업 장면에서 ‘유년기의 무력함’, ‘비극은 피할 수 없는 것 인간의 본질에 닿아있다.’라고 하는 선생님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의 복선과 아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본능에 무력하며 영화 속에서 이어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유년기’의 과정을 겪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며 사랑을 시작하고 맺음에 있어 역시 미숙하다. 

 그렇게 볼 때, 시종일관 머리를 풀었다 묶거나 만지작거리는 아델의 행동에서 비유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영화 후반에 아델은 엠마와 이별한 후, 유치원생들과 함께 놀러 간 바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다 말고 잠시 동료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그런 뒤, 바다에 둥둥 떠 배배 꼬이고 지저분했던 머리를 씻어내고(혹은 그녀와의 추억을 흘려보낸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단정하게 정리한 뒤, 다시 엠마와 만나는 장면을 통해 그녀의 변화와 성숙을 의미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델과 엠마의 만남은 우연이라기보다 운명처럼 다시 바(Bar)에서 이루어진다.(엠마 자신도 둘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게이 친구를 따라간 바(Bar)에서 한 남자에게 ‘사랑하면 그만이지 성별이 뭐가 중요해’라는 말을 듣고선 엠마처럼 숏 컷 머리를 한 여성을 따라 레즈비언 바(Bar)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감독은 쇼트를 짧게 끊어 그녀와 사람들을 번갈아 비춰 어색하고 불안한 아델의 감정을 나타내고 카메라는 아델의 시선을 따라 쫓아 그녀가 엠마를 애타게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둘은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데 이때 아델과 엠마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령 다소 활달하고 사교적이며 진취적인 엠마와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아델, (하지만 아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구분은 분명한 성격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델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고한 반면 엠마는 뚜렷하지 않으며 다양한 기회를 열어두고 있는 점 또한 차이를 보인다. 작게는 음식 취향(아델은 굴을 싫어하지만 엠마는 좋아한다.)이나 철학에 대한 사고방식 또한 확연히 다르다. 심지어 그녀들은 각자의 집에 방문해 자신들의 꿈과 진로에 대한 얘기를 상대의 가족에게 할 때 나타나는 가족들의 반응과 생각 또한 큰 대비를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둘은 그런 차이를 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서로의 다른 점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기라도 하듯 혹은 유일한 공통점인 서로의 몸을 갈구한다는 것에서 같은 맥락 일지 모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집에서 완전히 독립한 듯 보이는 둘은 함께 살고 있다. 아델은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엠마는 그림을 그린다. 아델이 반한 엠마의 머리는 더 이상 파란색이 아닌 노란색이다.(아델이 나체인 상태로 담배를 물고 있고 엠마는 그런 아델을 보며 아무 말없이 그림만 그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둘의 분위기가 냉랭함이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 엠마의 사랑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델과 엠마의 대비는 영화 중반에 가서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위태롭게 삐걱거리다 결국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퍼즐처럼 억지로 끼워 맞추던 행위 또한 소원해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 할 것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온도 차이다. 진취적인 성격의 엠마는 아델이 쓰는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써 나가길 기대하지만 소극적인 아델은 그러길 원하지 않으며 강요 또한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엠마는 전시회에서 만난 리즈와 눈이 맞는데(이때 아델은 크게 질투하며 파티에서 만난 남자에게 안겨 춤을 추며 질투를 유발해보지만 엠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델의 질투심 가득한 표정 넘어 보이는 스크린에 상영 중인 영화의 여배우가 소리 지르는 모습이 아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급기야 리즈와의 그림 작업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기까지 한다. 아델의 의심은 커지고 엠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직장동료와 바람을 피우지만 엠마에게 들키게 되면서 결국 둘은 헤어진다. 
  
 엠마는 아델과 헤어질 핑계를 찾고 아델은 여전히 사랑 앞에 어리숙하다. 그녀 자신의 감정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못 하며 그런 감정들이 표정과 행동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영화 초반 아델과 엠마가 다시 만난 바에서도 역시 엠마는 아델의 그런 면모를 알아본 것이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라는 캐릭터 역시 아델과 비슷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미숙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표출함에 있어 소극적이다. 아델과 엘리오 두 인물 모두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동성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첫사랑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큰 의미를 준다. 하지만 이러한 첫사랑의 영원함을 위태롭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상대에게 내비치는 것이다. 사랑에도 크기가 있다면 사랑의 크기가 작은 쪽은 대게 수동적이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사랑의 크기가 큰 쪽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감정 노동의 값어치를 수동적 대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추어 본다. 첫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별에 따른 사랑의 통증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 
  
 이러한 아델의 성장 과정에는 독특한 플롯이 주어진다. 처음 사귀었던 선배와 헤어졌을 때, 엠마의 집을 방문한 다음 날, 엠마와의 다툼과 헤어짐이 있은 후에는 항상 음악과 춤을 즐기거나 유치원 교사가 된 이후에는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는 것을 통해 고민과 걱정들을 잠시 잊는다. 혹은 그녀 나름의 자가 치유 방법으로 그러한 방식 들을 무의식적으로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춤과 음악만이 그녀에게 도피가 되는 역할을 했으나(혹은 치유가 되는) 엠마를 만난 후에는 그녀와의 섹스에서 아델은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델은 엠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새로운 그녀 마음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의 결말에서 아델과 완전히 헤어진 엠마는 로즈와의 새로운 연애를 통해 삶을 이어나가고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전시회에 아델을 초대한다. 전시회의 그림을 주목해보면 아델을 그린 그림은 파란색 색감을 사용했고 로즈를 그린 그림은 노란색 색감을 사용했다. 엠마에게 아델과의 기억은 파란색으로 비유되고 사랑하고 있는 로즈와의 현재는 노란색으로 비유된다. 핵심은 아델을 그린 파란색 그림과 아델, 그리고 포옹하고 있는 엠마와 로즈가 카메라의 왼쪽에서부터 한 쇼트에 순차적으로 나열되는데 아델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가장 따뜻했던 엠마와의 기억인(그래서 아델 에겐 파란색이 가장 따뜻한 색으로 비친다.) 과거와 돌이킬 수 없는 현재인 엠마와 로즈 사이에 서 있는 것이다.
아델은 결국 전시회를 빠져나와 길을 걸어간다. 카메라는 그런 아델의 뒷모습을 끝까지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나는데 아델의 슬픔이 느껴지는 동시에 아델은 엠마와의 기억을 가슴 한편에 묻어 둔 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갈 것이며 사랑을 통해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영화의 결말과 함께(이별을 통해) 소녀는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스토리와 구성이 상당히 탄탄하며 체계적이다. 아델의 감정을 나타내는 미장센 또한 뚜렷해 관객들로 하여금 아델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넉넉하고 푸짐하게 제공해주는 면 또한 이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스토리에 따른 캐릭터 설정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보편적인 10~20대 초반에 겪는 소녀(소년)의 성장과 첫사랑을 다룬 영화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낄 거야, 평생 동안

마지막으로 엠마의 대사를 빌려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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