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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May 23. 2022

변화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다

결과를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할 것

 못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데 익숙하다. 공부를 조금만 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영어보다, 실력이 달리는 수학을 열심히 해 전 과목 1등급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족한 걸 채워 올라운더가 되는 게 최고의 덕목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눈은 항상 부족한 지점에 꽂혔다. 발표 실력, 영어 회화 실력, 상체에 비해 통통한 다리 등...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고 나면, 그걸 채우고 개조하려 최선을 다했다. 강의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하는 상상만 해도 손에 식은땀이 흘렀던 나는, 몇 년 간 발표 과제가 많은 수업을 일부러 찾아다녔고 발표자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사람은 변하기 위해 산다고, 변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래엔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전보다 덜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말을 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부족해 청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할 때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태생적으로 발표 실력이 좋은 사람을 따라잡기 어려운 건 물론이다. 발표 실력을 키워보겠답시고 피곤한 수업을 전전했던 과거가 우스워질 만큼 말이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걸까? <뉴필로소퍼> 17호의 한 꼭지에서 '가디언'지의 기자 올리버 버크만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개인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좀처럼 판타지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듯한 이유는 나 자신을 바꾼다는 바로 그 생각 속에 역설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변화를 조직하는 사람은 내가 바꾸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니 '새로운 나'는 언제나,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나'의 창조물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올바른 변화를 계획할 때 '예전의 나'에게 의지해도 되는 것일까? '예전의 나'가 그렇게 똑똑하고 현명하다면 애초에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공감이 많이 됐지만,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엔 찝찝했다. 그간 해왔던 변화의 시도들이 모두 부질없어지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원하는 수준의 발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떨리는 입술로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뱉어보며, 매번 의견을 완벽하게 다듬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부족하게 말하면 그만큼 많은 질문을 받을 수 있고, 거기에 대응해가며 처음 했던 문장을 채워나가면 되는 거더라. 청자가 궁금해할 만한 포인트를 상상하는 능력도 화술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것만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도.


 우리는 마침내 인생을 통제하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열망한다. 사실 우리는 기꺼이 통제를 포기하려는 만큼만 변화한다. 우리는 어떠한 행동들을 추구하고 난 후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뉴필로소퍼> 17호


 올리버 버크만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제 변화의 방향이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발표 실력을 키워보겠다고 수 십 개의 발표 과제를 했지만, 정작 발표 스킬이 아닌 다른 것들을 배웠던 것처럼. 그러니 변화의 진짜 가치는,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하고자 했던 마음 가짐과, 변화를 위한 행위 그 자체에 있다. 고등어를 잡기 위해 바다에 나가도, 진짜 고등어를 잡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하게 새우를 잔뜩 잡아올 수도 있고, 전복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발견해 타겟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일단 고등어를 잡으러 가지 않으면 새우를 잡을 일도, 전복을 발견할 일도 없다. 그러니 우선은 고등어를 잡으러 나가는 게 핵심이다. 뜻하는 대로 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를 위해 움직였다면, 일단은 걱정을 놓아도 좋다. 당신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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