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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Apr 10. 2021

경주 토박이가 경주 예술가를 불러 모은 이유

[인터뷰] 경주시공간 대표 윤재정 씨

‘경주를 팝니다’


첨성대가 그려진 머그컵, 신라 금관이 새겨진 그립톡, 황룡사 9층 석탑 모양의 무드등. 경주가 녹아든 소품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경주 시공간은 윤 대표와 경주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경주 소품 50여 종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청년 작가와 함께 하는 15종류의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미술 동아리도 운영 중이다.


윤재정 대표는 경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는 경주에서 묻어난 생각을 담아 경주 곳곳을 엿볼 수 있는 기념품을 직접 만들고 판매한다.


경주 예술가를 불러 모은 이유

경주 시공간에서 판매 중인 경주 예술가들의 굿즈. 가장 인기가 많은 굿즈는 머그컵이다.  ⓒ한나라


경주시공간에서는 다른 경주 예술가들의 굿즈도 판매하시잖아요. 어떻게 함께 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만드는 굿즈는 제가 보는 경주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경주의 문화가 다양해서 제 시선으로만 경주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해요. 다양한 예술가들의 눈에 담긴 경주를 보여 드리는 게 경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공간도 더 다채롭고 좋은 공간으로 느껴질 거고요.


윤 대표는 경주시공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청년 작가들과 함께 할 계획이었다며 청년 작가들이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에서 공예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공예품 몇 개를 팔기 위해서 가게를 오픈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공간만 주어지면 자기 공예품을 팔아보고 싶고, 상품 가치를 시험하고 싶거든요. 그런 기회를 우리 시공간에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경주시공간은 모든 청년 작가들에게 열려있지만 아무나 입점할 수는 없다. 경주를 주제로 만든 공예품이 있어야 한다. 공산품도 최대한 배제한다. 경주를 주제로 삼은 공예품이 있을 때 일반 공예품을 함께 입점하는 일은 가능하다.


“경주랑 관련된 공예품이 있어야지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청년 예술가들한테 조금 벽이 있더라고요. 일반 소품숍과 다르게 경주 테마의 작업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입점할 청년 예술가들을 찾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입점한 공예품이 안 나가는 경우엔 어떻게 하시나요?

매달 작가들과 회의를 해요. 손님들의 반응이랑 판매 실적을 작가들에게 알리고 가격 조정 여부를 여쭤봐요. ‘많이 팔고 싶으면 가격을 조금 낮추는 것이 좋겠다, 공예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팔고 싶으면 지금 가격을 유지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요.


가격 측정을 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첫 달에는 작가 쪽에 원하는 가격을 정해달라고 말해요. 가격을 너무 낮게 측정하면 남는 건 없고 힘만 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저는 그걸 미리 겪어봤으니까 미리 이 부분을 전달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정해달라고 해요.


“그래도 가격에선 일반인들과 제작자의 입장이 많이 갈려요. 일반인 시선에서는 높은 가격이라고 느껴져도 제작자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이라고 느껴질 수 있거든요. 판매자 기도 하지만 저도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이니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매월 여러 명의 작가들과 그 상품을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사실 이 일은 수수료가 얼마 안돼서 제게 남는 건 크게 없어요. 상품을 관리하고 정산하는 걸 생각하면 안 하는 게 속이 편해요. 그래도 이걸 계속하는 이유는 작가님들한테 고정적인 수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에요. 경주의 시선도 더 다양하게 굿즈에 담고요.


예술가와 시민을 잇는 공간

라크라메 원데이 클래스 ⓒ 경주시공간


전공이 디자인인데 예술 교육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 덕분에 예술 교육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분은 일반 수업과는 다른 예술 교육을 추구하셨어요. 단순히 잘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즐겁게 느끼도록 하셨죠. 직접 아이들이 쓸 물감을 만드시고, 춤도 추시고 책을 읽으면서 입체적인 수업을 하셨어요. 이런 예술 수업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더 창의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예술 교육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윤 대표는 자신은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에게 예술 교육의 길을 열어준 은사님은 윤 대표가 졸업한 후에도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하게 일만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주셨죠.”


경주 시공간은 청년예술가와 함께하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열 명이 넘는 예술가와 협업하는 중이지만, 창업 초창기에는 경주 예술가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솔직히 청년 예술가들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이전에 대구 예술 업체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 당시 대구에서 좋았던 건 청년센터를 통한 커뮤니티가 조성이 잘 되어 있던 점이에요. 그런데 경주는 아직 그런 조직적인 커뮤니티가 없어요. 심지어 저랑 같이 미대 입시 준비했던 사람들도 다 경주를 떠났어요. 남아있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는데, 도대체 다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요.”


청년 예술가 클래스를 함께하는 작가는 어떻게 섭외하셨나요?

요즘은 황리단길이 있어서 그나마 경주 예술가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플리마켓에 나가면 집에서 생활 공예하시는 분들이 공예품을 가지고 나오시고, SNS를 통해 알게 되기도 해요. 여러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직접 클래스를 들어봤어요. 방향이 맞으면 시공간에서 함께 교육을 진행해보자고 제안을 하죠. 개인 공방이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윤재정 대표는 지역 굿즈 개발뿐만 아니라 지역 예술가와 시민의 문화 소통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밝혔다.


“제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이상은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가 되는 거예요. 경주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예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거든요. 지금은 이 이상을 이루기 위해 지역 굿즈 제작 및 판매를 수익 모델로 삼고 있어요.”


경주의 시간과 문화를 담은 공간 

경주시공간의 대표인 윤재정 씨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소속 예술 강사로 활동하며 경주의 시민들과 예술가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 경주시공간


경주시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시’는 한자 시간의 時, 영어 culture의 C, 이렇게 2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경주는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도시잖아요. 그런 경주의 시간과 문화를 담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시공간이라 지었습니다.


경주 토박이가 만드는 경주 기념품이 인상적입니다. 가게를 연 이유가 있나요?

전 직장에서 대구시 굿즈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가본 적도 없는 곳의 사진만 보고 기념품을 만드는 일이 힘들더라고요. 제가 나고 자란 경주 굿즈를 만든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윤 대표는 직장 생활 당시에 점심시간마다 경주 굿즈 시안을 그렸다고 한다. 그에게 경주는 가는 곳마다 추억이 깃든 곳이다. 경주 곳곳에 대한 기억이 깊게 남아있기에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경주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작업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경주 유적지와 가게가 가까워서 일상생활 중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첨성대도 가게에서 10분이면 가거든요. 저녁에 산책하러 나가서 사진을 찍어와요. 경주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익숙한 시선으로 경주를 관찰하곤 해요. 


윤재정 대표는 ‘경주 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굿즈’를 만든다고 했다. 온라인 스토어를 연 이후 '경주다운 경주 굿즈'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한다고도 말했다.


“주문하시는 분들의 지역이 정말 다양해요. 어떻게 알고 주문하시는지 제가 궁금할 정도예요. 후기를 보면 여행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없으니 기념품이라도 구입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좋은 소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돼요.”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해 가게 문을 연다. 오전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각종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엔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학교 출강이 잡힌 날에는 수업 준비를 하기도 한다. 저녁 8시 가게를 마감하면 본격적인 굿즈 제작에 들어간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은 소음이 심하고 냄새가 많이 나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는 마감 시간을 활용한다고.


경주시공간의 마스코트 공간이. 윤 대표가 포항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9개월 차 강아지다. 하루하루 새로운 사고를 치는 중이다.  ⓒ 한나라


매일 10시간 이상을 일하는데 쉬고 싶을 땐 어떡하세요?

정말 힘든 날엔 직원에게 맡기도 쉬는 날도 있는데, 최대한 일을 하려고 해요. 직장인이 월급 보고 회사 나가는 것처럼 저도 가게를 매일 열어요. 전 직장 퇴사할 때 부모님한테 큰소리를 뻥뻥 쳤거든요. 퇴사하고도 알아서 먹고살거라고요. 그 말을 어기는 게 싫더라고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무엇보다 힘들다고 맨날 안 나오면 가게를 버리는 거잖아요.


경주시공간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세요?

예술가한테는 예술 교육을 할 수 있는 곳. 일반 시민들에게는 예술을 경험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술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만들 거예요. 사람들이 시공간을 재미있는 곳으로 기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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