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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hole Nov 21. 2023

Detour 8. 외통수 같은데요.

원유 생산을 추가 감산한다고요? 정말?

  맞든 틀리든, 어쨌든지 전망을 하고 그에 맞는 포지션을 쌓아가는 게 딜러나 펀드 매니저의 숙명이라면 숙명일 텐데요, 허구한 날 하는 전망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는 뭐니 뭐니 해도 정치 분야입니다. 사실 이쪽은 전망이 거의 안되다시피 하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서 차리리 이걸 전망할 바엔 다른 정치판을 다 전망하겠다고 할 만한 끝판왕이 있습니다. 이렇게나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데 심지어 영향력은 꽤나 큽니다. 바로 '중동'이 그 주인공입니다.


  중동에 대한 전망은 종교와 정치, 문화, 역사, 경제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그나마 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우디와 이란 간의 역사와 라이벌 관계,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외교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흘러왔던 반목의 흐름을 좀 이해하고 있어야 비로소 그 그림이 어렴풋이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그림을 좀 눈에 넣어 두셨다면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분야가 있습니다. 중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야, 바로 원유가격입니다. 현재 원유가격은 OPEC+의 감산 이슈가 있지요. 그리고 OPEC+의 쌍두마차 중 하나는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이 사막으로 뒤덮인 나라의 결정이 결국 유가를 흔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금융시장이 처음에 주목했던 것은 이란의 참전, 즉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여부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 경우, 인플레이션 잡기는 물 건너갈 것임을 인지한 미국이 최정예 함모전단을 2개씩이나 보내서 으름장을 놓음에 따라 이란도 대놓고 자기가 시켰다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럼 이걸로 다 끝난 걸까요?




  지금까지 원유의 감산 담합은 사실 잘 이루어진 역사가 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오랫동안 유지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몇 차례 성공한 적은 있습니다만, 대체로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장 점유율이 걸려있기 때문이고, 개별 국가의 GDP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기타 다른 산업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닌 중동 산유국들에게 있어 원유 수출은 GDP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감산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우디는 이번 감산을 통해 경제에 타격을 얼마나 입었을까요?


  사우디아라비아의 3분기 GDP는 YoY 기준으로 -4.5%를, 전분기 대비로는 -3.9%를 기록했습니다. 엄청난 역성장입니다. 역성장 기간도 깁니다. 2023년 1분기는 전분기 대비 -1.4%, 2분기는 -0.4%, 3분기는 언급한 바와 같이 가장 큰 -3.9%입니다. 3개 분기 연속 역성장이네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개 분기 이상 역성장이면 경기침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감산이 이어지고 있으니 4분기 역시 마찬가지로 안 좋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GDP YoY 추이. 10년래 2020년대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 낙하 속도는 더 어마어마한 수준 / 출처 : Tradingeconomics.com


  사우디 GDP가 요 근래 크게 하락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2020년입니다. 이때 시장에 한번 큰일이 있었죠. 관련 금융상품 포지션이 있으셨다면 아마 기억하실 수도 있습니다. 바로 유가가 엄청나게 하락했었습니다. 미국 WTI 선물이 배럴당 -40$을 터치했었죠. 세상에. 원유 한 드럼통을 사면 40달러를 준다니요.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만, 어쨌든 원유가격이 (-)의 영역으로 내려간 것은 금융시장에 상장된 이후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사우디 GDP가 원유가격의 엄청난 하락으로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원유가격이 내려갔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사우디의 엄청난 증산 때문입니다. 현재 줄여버린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약 890만 배럴 수준인데, 당시 1200만 배럴로 증산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 유가가 엄청나게 하락하고 나서는 800만 배럴 이하로 낮아지긴 했습니다만. 이유는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잘 나가던 셰일가스 업체들 덕분에 미국은 원유 수출국이 되었고, 중동은 에너지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었죠. 그래서 유가를 낮추기 위한 치킨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증산으로 유가를 하락시켜 셰일가스 업체들을 날려 버렸습니다.




  그 뒤에 유가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뒤 증산 후 급격히 낮추었던 원유 생산량을 다시 증가시켰습니다. GDP 역시 이에 맞추어 22년까지 높은 증가율을 기록합니다. 여기에는 유가의 상승과 수요의 확대가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유가의 상승에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한몫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서 유가가 100$를 넘어 버렸으니까요. 글로벌 경제의 회복은 탄탄한 원유 수요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던 세계 경제는 급격한 수요 확대를 경험하고 있었고, 물건 생산하기가 너무나 버거울 정도로 빡빡하게 돌아갔습니다. GDP 증가율은 YoY 기준 10%를 넘어 버립니다.


  그 와중에 미국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미국에 해만 안 끼치면 관심 없던 트럼프와 달리, 인권에도 신경 쓰며 사우디에게 견제구를 날리기 시작했죠. 이란을 쥐 잡듯이 잡던 트럼프와는 좀 다르게 그래도 이란과 핵협정을 다시 되살리려고 하는 움직임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사우디에 대한 투자도 잘 안 하네요. 네옴 시티 프로젝트로 돈도 많이 필요한데 말이죠. 그 와중에 유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을 딛고 스멀스멀 하락해서 배럴당 80$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그래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이번엔 감산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요.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었죠. 엄청난 수요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가장 강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최대 1,100만 배럴까지 도달했던 일일 원유 생산량을 약 900만 배럴 수준까지 낮추었습니다. OPEC+는 22년 200만 배럴, 23년 166만 배럴을, 사우디는 거기에 더해 독자적으로 올해 10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공격적인 감산 정책의 결과로 유가는 결국 의도대로 상승했고, 미국은 어찌할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말이죠.


  미국이 2022년도 들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기준금리를 이렇게 전격적으로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떠올렸던 생각은 곧 다가올 미국 경제의 침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그렇게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년이 안 되는 사이에 기준금리를 5.25% 올렸지만, 수요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원유 감산으로 인한 승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이렇든 저렇든 고비를 지난 결과일까요? 드디어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가 나타난 건지, 초과저축의 영향이 비로소 끝난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게임이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관계가 맺어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 자신들의 원유 감산으로 이란의 원유가 필요해진 미국의 유화책으로 이란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동결 자금도 돌아온다고 하죠. 국방력에서 차이가 큰 사우디는 이런 흐름이 불편합니다. 근처에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군사력도 막강한 이스라엘과 슬슬 손을 잡고자 합니다. 게다가 슬슬 세계경제도 수요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니, 감산도 올해까지만 하고 접을 요량으로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12월까지만 감산을 하기로 했으니까요. GDP도 더 이상 깨 먹으면 곤란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발발한 전쟁은 이스라엘과 협력 가능성을 닫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종교가 민심의 기반이 되는 나라입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심지어 같은 종교를 가진 국가와 전쟁 중인 그 국가와 협력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고 배후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란에게 좋은 일도 하기 어렵습니다.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추가적인 감산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말(23년 11월 18일) 추가 감산 100만 배럴의 연장을 검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요건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탄탄한 수요가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공급이 줄어드는 만큼 수요도 감소하면 가격이 굳이 높게 형성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수요는 당분간 크게 늘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이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4분기 연속 역성장이 확정적인 사우디가 다시 한번 고난의 행군을 시작할 수 있을지 미지수 같습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생각이 됩니다. 만약 내년에 증산을 하게 되면 어찌 될까요...? 후후후.




  이 모든 생각의 시작은 바로 방금 언급했던 바로 그 뉴스였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 이 글로 이어졌네요.


  유가 이야기는 정말 파도 파도 끝이 잘 안 보입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이 하루속히 종료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을까요. 



  [표지그림: Unsplash의 Zbynek Burival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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