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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Dec 23. 2019

수학 공식 모음

[영화] 백두산 (2019)

  학창 시절, 외우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그나마 수학에는 조금 흥미가 있었다.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어려웠고 잘하지도 못했지만, 문제를 풀어 정답을 찾았을 때 드는 쾌감과 안도감이 좋았다.

  비암기 과목으로 분류되는 수학도 공부하는데 반드시 외워야 할 것들이 있었다. 특히 공식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반드시 외워야 했다. 모른다고 아예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몇 배로 더 걸렸다. 한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다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툭 치면 줄줄" "자다가도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식을 달달 외워야 했다. 공식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공식을 무작정 외우면 안 됐다. 먼저 원리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직접 증명해본 뒤 문제를 푸는 데 사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응용된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문제에 맞는 공식이 떠오르지 않거나 엉뚱한 공식을 잡고 헤매다 시간만 날리기도 했다.


  <백두산>을 보면서 수학 공식이 생각났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뜻을 알기 어려웠다는 것(오히려 영화는 굉장히 명쾌했다)은 아니고, 학교 다닐 때 지겹게 풀었던 수학 문제집 앞에 나온 공식 모음 같았다. <백두산>에는 재난 영화에 사용되는 공식이나 클리셰가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재난 영화라 하면 일단 평화로운 일상과 먼저 위기를 알아차린 동물로 시작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은 파괴되고 뉴스는 상황을 정리해 스크린 안팎의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동안 재난을 경고했지만 무시당한 과학자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주인공은 그것을 실행한다. 임무가 성공하기까지 주인공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결국 살아남아 일상으로 돌아온다. 끝으로 지도자의 엄중한 연설이 나오면 다음은 엔딩 크레디트 차례다.

  <백두산>을 보고 수학 공식을 떠올리는 것조차 뻔했다. 사용된 많은 재난 영화의 공식과 클리셰가 적나라한 스포일러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들 덕분에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었다. 조금 무리다 싶은 설정도 장르적 특징이겠거니 인정할 수 있게 했고, 덕분에 영화를 한결 수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병헌과 하정우의 위트는 이러한 영화에 재미를 만들었다.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봤던 익숙한 농담. 마치 어린아이를 항상 자지러지게 하는 똥 이야기처럼, 그것은 언제나 웃음을 보장하는 농이었다.

  분명 누군가에게 <백두산>은 식상한 영화가 될 수 있고, 웃긴 영화가 될 수 있고, 슬픈 영화가 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백두산에 뻗어있는 많은 갱도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고, 그중 목적에 맞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사람의 조력이 필요하다' '길을 나서기 전에 미리 여정을 계획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그것을 수정해야 할 수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품은 목표는 잃지 않는다면, 조금 헤맬지언정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 것이다'와 같은 다양한 교훈을 얻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사람의 인생과 그것을 담은 영화에 절대적인 공식이 없듯이, 그것들을 통한 감상에도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은 많은 재난 영화의 공식을 빽빽하게 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수학 공식에 이어 생각난 것이 하나 더 있다. 문제를 고민하거나 공식을 이해하기에 앞서 문제집 맨 앞에 나와 있는 공식 모음을 보거나 맨 뒤에 나와 있는 모범 답안을 보는 것은 응용력을 떨어뜨려 수학 공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백두산 (2019)

감독 이해준, 김병서

출연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전혜진, 수지


백두산 (2019) 출처 : Daum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 발생.
갑작스러운 재난에 한반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고,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추가 폭발이 예측된다.

사상 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해 ‘전유경’(전혜진)은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계획하고,
전역을 앞둔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하정우)이 남과 북의 운명이 걸린 비밀 작전에 투입된다.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이병헌)과 접선에 성공한 ‘인창’.
하지만 ‘준평’은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인창’을 곤란하게 만든다.
한편, ‘인창’이 북한에서 펼쳐지는 작전에 투입된 사실도 모른 채
서울에 홀로 남은 ‘최지영’(배수지)은 재난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사이, 백두산 마지막 폭발까지의 시간은 점점 가까워 가는데…!


 백두산 (2019) 출처 : 유튜브 CJ Entertainment Official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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