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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an 03. 2020

친구와 별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평소에 태양의 소중함에 감동하기란 쉽지 않다. 며칠씩 날이 흐려 지긋지긋하거나, 방구석의 화분이 시들고 나면 그제야 한 아름 햇빛이라도 그리워진다. 오히려 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으면 무자비한 그 존재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같은 것을 두고 필요할 때 없으면 아쉽고, 불편하면 성가셔하는 이기심은 태양의 존재처럼 당연한 걸까?

  얼마 전, 숙면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암막 커튼을 치고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개운치 않아 고생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어날 때가 됐음을 알려주는 햇빛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좀 더 잘 자기 위해 어둠만 찾았을 뿐, 밝음의 필요성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정해둔 시간에 자동으로 불이 켜질 수 있도록 알람 기능이 있는 방 등으로 서둘러 바꿔 달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찌뿌드드함은 하루를 고단하게 만든다. 그것은 삶의 질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출처 : 다음


  영화 『천문』은 조선의 하늘을 갖고자 노력한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멜로 영화 장인’ 허진호 감독은 끊어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세종대왕과 장영실을 각각 연기한 한석규와 최민식의 호흡도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영화를 보며 『약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혼자 남겨두고, 떠난다는 게 가장 큰 죄입니다.” 멜로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 공상두(박신양 분)의 이 대사는 『천문』에 딱 맞았다. 영화 속 세종대왕과 장영실은 단순한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꿈에 대해 죽이 잘 맞는 동반자였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쌓아가는 교분과 결국 불가분의 관계가 된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방해는 멜로 영화의 전개와 비슷했다. 그것은 마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로 많은 사랑을 받은 허진호 감독의 장기를 보는 것 같았다. 우정으로 여겨지는 두 사람의 애틋한 눈빛과 절절한 표정을 보면서, 역시 사랑과 우정은 종이 한 장 차인가 싶기도 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출처 : 다음


  나에게도 친구와 별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 친구 하나가 찾아와 내 앞자리에 돌아앉았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는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샤프를 집어 연습장에 그림을 그렸다. 양손에 무언가를 든 졸라맨과 휘갈겨 그린 별과 동그란 달. 졸라맨의 손에서부터 이어진 선은 별과 달에 닿아있었다. “별을 향해 돌을 던져야 달이라도 맞출 수 있어.” 친구는 그 말만 하고 휙 하니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시험 기간도 아니었고, 진학에 대한 고민을 내색한 적도 없었다. 서로 장난만 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진지한 이야기에 나는 어리둥절했었다. 친구도 어디서 듣고 해준 말이겠지만, 왜 하필 그때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시 친구의 말은 나에게 그저 생뚱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났을 땐 내게 와서 그 말을 해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나를 여러모로 성장시켜준 친구. 장난을 치다 선생님께 혼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점심을 함께 먹던 정말 친한 친구였다. 비록 졸업 이후 연락이 끊어져 더는 소식이 닿지 않지만, 친구가 해준 별 이야기 만은 요즘도 종종 떠오른다. 그때마다 친구와 함께 보낸 학창 시절이 그립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출처 : 다음


  같은 곳을 바라보던 영화 속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에게 장영실도, 장영실에게 세종대왕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하늘과 시간도 세종대왕에게는 그저 이루고 싶은 꿈에 그쳤을지 모른다. 이처럼 서로 알아주고 위해주는 사람 있다는 것은 각자에게 정말 큰 힘이 된다. 죽이 잘 맞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도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가끔, 마음이 잘 맞는 이가 더 이상 곁에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진작 소중하게 여기고 지켰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덧없이 놓쳐버렸다. 함께 공부하고, 장난치고, 걸어갔는데, 그것 역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모두는 나에게 햇빛만큼 중요한 힘이었다. 그럼에도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고 소홀했던 것 같아 아쉽다. 미처 알지 못했던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다음, 그것들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그들의 빈자리와 함께 사라진 것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들과의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달이라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감독 허진호

출연 최민식, 한석규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출처 : 다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

20년간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두 사람이었지만
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세종은 장영실을 문책하며 하루아침에 궁 밖으로 내치고
그 이후 장영실은 자취를 감추는데...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진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출처 : 유튜브 롯데엔터테인먼트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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