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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Nov 16. 2020

테두리는 없었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철퍼덕 앉은 아기는 무언가를 야무지게 쥔 손으로 바닥을 연신 휘적거린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흥에 못 이겨 소리까지 지른다. 좋은가보다. 이미 바닥에는 붉은 칠이 한가득하다.  빨간 손. 흰옷에도 잔뜩 묻었다. 정말 신이 났다.


  나는 사진이 참 어렵다. 특히 찍히는 쪽이 되어버리면 너무 난감해 몸이 굳어버린다. 사진 찍힌 것을 보면 서있지만 서있는 것 같지 않고, 앉아있지만 앉아있는 것 같지 않다.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유난히 사진이 잘 받지 않는 얼굴과 구부정한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하는 순간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다. 주변에서 어디가서 사진에는 찍히지 말라고 주의를 줄 정도다. 사진에 잘 찍히고 싶은 나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면 나을 거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럼 난 성인이 된 이후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신체적인 이유건, 심리적인 이유건 간에 요즘 같은 세상에 카메라 렌즈를 어려워하는 것은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얼마 전 동생 결혼식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참 곤혹스러웠다. 가뜩이나 카메라 앞에 서면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데, 아빠 뒤에 서서 손을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맸다. ‘등이 굽었나?’ ‘고개는 괜찮나?’ ‘표정은?’ ‘눈을 떠야 해’ ‘카메라 렌즈!’ ‘근데 손은 어떻게 하지?’ 그 사이 사진사는 계속해서 나를 지적했다. “아니…” 결국 나에게 와서 위치와 자세를 직접 잡아주었다. “아버님이랑 별로 안 친해요?” “네” 아빠가 먼저 냉큼 대답했다. 나는 순간 엄마 뒤에 설 걸 후회했다. “아드님, 군인이세요? 너무 뻣뻣해요”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어서 찍어줬으면 싶었다.


  전시장에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벽에 쓰인 바스키아에 대한 설명을 보고 있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바스키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그의 그림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었다. 나도 곧장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러웠다.

  여기저기 재생되는 사진 속 바스키아의 자유스러운 모습이 썩 멋있었다. 포즈가 자연스러웠고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남다르네!’ 나는 문득 그가 캔버스의 크기를 의식했을지 궁금했다, 무언가를 그리려고 마음먹었을 때. 어떤 그림은 큰 종이 한쪽에 작게 그렸고, 어떤 그림은 무엇인지 모를 것 위에 삐져나갈 만큼 가득히 그렸다. 별나지 않은 나로서는 테두리를 알았다면 그렇게 그렸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는 테두리가 많다. 말하고 생각할 때의 테두리. 사람을 대할 때의 테두리. 어딜 다닐 때의 테두리. 간혹가다 넘을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코앞까지만 가고 말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안에서 구부정하다. 그 이유가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간에 어떻게든 그것을 넘고 싶다. 그렇게 하면 등도 펴지고 표정도 부드러워질 것만 같다. 사진도 잘 찍을 수 있겠지.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기간 2020.10.08. (목) ~ 2021.02.07. (일)

시간 10:30 ~ 19:00

장소 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출처 : 롯데 공식블로그


롯데뮤지엄은 천재 화가로 사회적 편견에 저항하며 불꽃 같은 예술세계를 보여준 장 미쉘 바스키아의 대규모 전시를 개최한다.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바스키아는 자유와 저항의 에너지로 점철된 새로운 예술작품을 통해 현대 시각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까지도 젊음의 대명사이자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바스키아의 주옥같은 작품 150여 점이 국내 최대 규모로 롯데뮤지엄에 전시된다.

롯데뮤지엄은 ‘거리’, ‘영웅’, ‘예술’의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바스키아가 이룬 혁신적 예술세계 전반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뉴욕 거리에서 시작된 SAMO 시기부터 바스키아의 예술 속에 나타나는 대중문화와 산업화의 새로운 방식들, 그리고 영웅을 모티브로 그가 창조한 다양한 아이콘까지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작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또한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한 대형작품 7점이 출품되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거리의 이단아로 뉴욕 미술계에 그 존재를 알린 바스키아는 스타작가 반열에 빠른 속도로 안착했다.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 밑바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원초적인 인간 본성을 대면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까지도 미술, 음악과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해석되며, 살아있는 신화이자 영웅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출처 :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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