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 Nov 10. 2023

공간의 기억

기억이 나를 사색한다. 



 카프카에 자주 찾아오던 손님이 있었다. 남자였고, 나이는 나보다 어렸다. 이상하게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카락과 항상 워커를 신는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매번 가장 친절한 자세로 음료를 받았고, 다 마신 잔을 조심스럽게 가져다주었다. 나도 넙죽 허리를 숙여 빈 잔을 받았다. 다행히 내가 내준 음료를 남기지 않았고, 어쩌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카프카라는 장소를 좋아하든지. 

 가끔  카프카에 들리는 사람 중에 음료는 별로지만 공간을 즐기기 위해 오는 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차츰 구분이 가기 시작했다. 카프카 음료를 모두 골고루 마셔본 후에 그래도 괜찮다 싶은 음료만 주구장장 시킨다. 그 사람은 공간이 필요했고, 카프카가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필요를 충족해 준 것이다. 그 연결이 카프카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된다. 연결이 끊긴다면, 서서히 카프카라는 공간도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연결은 공간 카프카의 생명 연장을 위한 수혈관이기도 하다. 식물이라면 따듯한 햇볕인 것이다.

  그런 공간이 있다. 나와 맞는 공간. 특별하지 않더라도, 또는 공간 사장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공간 자체에 정이 가고, 그 공간에 있으면 책이 잘 읽히고 집중이 잘 되는 공간. 나와 맞는 공간을 찾는 건 인연이다. 적어도 수천 명은 카프카에 왔다 갔을 것이고, 그중에 맞는 사람이 몇 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 확률은 생각보다 낮다. 


  그 남자는 어느 날부터 카프카에 오지 않았다. 그런 손님이 많았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후에 다시 그 손님을 만났다. 손님은 조금 안절부절못하면서 카프카에 못 온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었고, 손님이 그걸 말할 의무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 남자가 카프카라는 공간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공간에게 하는 말이었고, 남자는 공간에게 미안한 것이었다. 

 "그게, 조금 아팠어요."

  나는 어디가 아프다고 묻지 않았다. 남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치 그곳에 상처가 있다는 듯이. 마음이 아팠던 것인지, 아니면 가슴 쪽 어딘가를 수술했는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일본에 간다고 하면서 케이크를 가져왔다.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도 카프카를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남자에게 커피를 대접했고, 남자가 가져온 케이크를 잘라서 함께 나눠먹었다.   


  그날 처음으로 남자의 이름을 알았고, 처음으로 조금 긴 대화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깊은 연결은 아니지만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일본은 어땠어요?라고 묻고 그동안 카프카는 어떤 과정으로 변했는지를 전할 정도의 친분이 생긴 것이다. 그가 보인 예의에 대한 나의 예의이기도 하다. 

 친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보다 나는 이 남자가 더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와 술을 마시거나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고 다가오면 오히려 나는 뒷걸음칠 것이고, 내 제스처에 이 남자도 상처받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남자가 먼저 뒷걸음칠 수도 있다. 나의 관심이 남자가 공간을 향유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딱, 그 정도. 

  이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딱 그 정도가 아무 사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딱 그 정도'는 우리의 관계가 처음부터 정해졌고, 그 관계가 완성했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원하는 만큼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건 오히려 드문 환대인 것이다.  



  그 남자가 떠난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워 하는 사람 중에 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남자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서 놀랐다. 숫기가 없어 보이는 남자는 머리에 하얀 두건을 동여맨 모습으로 일본에서 선술집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건지, 동업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아르바이트생이나 종업원은 아닌 듯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과 분위기는 자신의 공간을 가꾸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 자신의 공간을 열었구나. 

  언젠가 나는 그 남자의 공간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그때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봤을 때뿐이었다. 이럴 수도 있겠다. 내가 그 남자의 손님이 되는 것. 그때는 우리 관계가 카프카에서와 다를 것이다. 그 관계는 그 남자가 이룬 공간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나도 그 공간을 좋아한다면, 그 공간과 관계를 맺을 것이고, 그 공간의 법칙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 술집이 대화가 많은 곳이라면, 나도 용기를 내어 남자가 건네주는 술을 마시면서 신세한탄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한 손님을 보고 그 남자가 다시 떠올랐고, 그 남자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봤다. 남자의 인스타그램은 없어졌다. 처음 인스타그램을 들어갔을 때, 일본 어디에서 열었고, 그 공간의 이름을 기억해 둘걸, 생각했다.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원소 같은 사람과의 관계가 많다.  손님으로 거쳐간 사람들. 내 기억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사람들. 평소에는 사라져 없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손님을 통해서 떠오르는 사람들. 그 귀퉁이들이 조금씩 넓어져 , 카프카라는 공간을 만들었고, 나도 그 귀퉁이 한 부분이 되었다. 조금은 무서운 생각인데, 내가 점점 공간에 녹아 사라지고 후에는 공간만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서점 카프카도 영원할 수 없다. 카프카가 사라진다면, 그 모든 공간에 응축된 기억은 어디로 사라질까? 사라졌는데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분해되어 각자 기억하는 기억으로 이미 존재할 것이다. 파편화된 기억은 그것대로 충분할 것이다.  

  벌써 카프카가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이곳에 왔던 사람이 다시 찾아와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들은 그때의 카프카를 회상하면서 이곳에 함께 온 사람도 함께 회상한다. 묘하게 나도 덩달아 그때로 돌아간다. 공통의 기억이 알 수 없는 끈을 갑자기 연결한다.  삶에서 어떤 접점도 없는 두 사람이 한 기억에 풍덩 빠진다. 

 그럴 때면 내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지만,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도구가 아니다. 기억하는 기억, 그 순간은 기억이 주인공이다. 기억 속에 우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기억이 역으로 나를 관찰한다. 기억이 나를 사색한다. 사색의 잔잔함에 아늑하게 서려있는 우리는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아마도 그 남자 손님도, 그리고 미래의 나도 그럴 것이다. 카프카에 오는 당신도 그러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환한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