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내리면 Jan 08. 2020

1. 나도 책 파는 건 처음이라

팔리는 책? 여전히 모르겠다.



대학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무엇이든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할 생각이었던 나는 '직장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보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가 되어서야 취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말로만 듣던 취업난의 현실 속으로 뛰어드려니 순수하게 문예창작과에서 글을 쓰고 보낸 4년의 시간이 남들에 비해 뒤쳐지는 듯했다. 누군가 내 삶에 대해 묻는다면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무수한 변명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데 '나를 뽑아주세요!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내미는 자기소개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고등학교까지는 모두가 같은 공부를 하며 성장했지만, 문예창작과를 선택하고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꿈꾸었던 것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누군가의 합격 자소서를 읽다 보면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 헛된 시간을 보냈던 걸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과 다른 직업을 가진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배우고자 선택한 것도, 내가 일하고자 선택한 것도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택한 것들이니까. 나는 내  첫 선택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택한 것이 틀렸다면 무수한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늘 주저하고 망설일 테니까. '내 4년 간의 등록금은 헛되게 쓴 것이 아니야!'지금의 내 직업은 그렇게 단순한 오기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도서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현재 한국의 직업의 개수는 1만 2천여 개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직업은 의사, 변호사, 과학자, 선생님 정도. 책을 꽤 좋아해서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지만, 내가 책 팔이가 될 줄이야.


내 첫 직장모 오픈마켓의 도서팀 소속이었다. 하루에 판매되는 도서의 양도, 하루에 등록되는 책의 수도 어마어마다. 선배들의 책상에는 책들이 높은 탑처럼 쌓여있고, 업무 시간에 책을 뒤적이며 책을 고르는 예리한 눈빛이 그저 멋있었다. 책이야 저절로 팔리는 줄 알았지. 책을 소개하는 한 문장에,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한 이미지 하나에도 누군가의 무수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선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하며 어떠한 책을 얼마에 판매할지 협의했고, 잠시라도 독자의 눈에 스칠 수 있도록 광고 배너, 메일링, 문자 한 줄을 넣기 위해 분주했다.


내가 첫 입사했을 때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이어서 책을 판매할 때 반드시 출판사와 협의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정가 1만 원짜리 책을 30% 할인 판매하기 위해 몇 % 의 공급률로 재고를 확보할 수 있을지 협의하는 것이다. 만약 정가의 35%(3,500원)로 공급받을 수 있는 도서가 있다면 얼마에 판매해야 효과적인지 결정해야 했다.


한 주 동안 출간되는 책들 중 우리의 눈에 띄는 신간 도서는 한정적이지만, 실제 출간되는 종 수는 (여전히)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중에서 좋은 책, 가치 있는 책이 자연스레 독자의 눈에 들고 콘텐츠 자체로 인정받아 판매로 이어지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수많은 책들이 경쟁하다 보니 그 책이 어떠하든 저렴할수록 눈에 띄고 많이 팔렸다.


드디어 첫 업무. 선배는 문학, 사회, 예술 등 몇 개의 카테고리 소될 도서를 선정할 권한을 주었다. 풋내기 신입사원의 눈에 어떤 책이 얼마나 팔릴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대학시절 즐겨 읽고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김연수 작가의 신간 도서 <세상의 끝, 여자 친구>를 카테고리 최상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순서대로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일 분이 멀다 하고 새로고침을 르며 판매량을 확인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도서 업계의 많은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이라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한다. 내가 좋은 작품이라고 느낄수록 더 저렴하게 판매해서라도 더 많이 읽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도 그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이 책을 3,900원 특가로 판매하기 전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