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J May 13. 2024

나에게 경제적 능력이 남아있을까?

[우울증 환자 생존기]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

회사의 마지막은 병가를 내기로 했다. 아직 9일의 병가가 남아있다. 진단서를 받았다. 그동안 진단서를 여러번 받았지만, 내 병명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전 것과 비교해보았다. 4년간 병명이 3개에서 6개로 늘었다. 선생님께 '단약하는 날이 올까요?' 물으니 올거라고 했다. 물론 내 앞에 진료를 본 환자는 10년째 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우울장애 NOS / 공황상태 / 비기질성 불면증 / 기타 양극성 정동장애 / 범불안장애 / 신체형자율신경기능장애


질병분류기호 F. 정신질환의 분류기호다. F 질병 6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된 것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한다는 압박감에 하루 종일 이직 사이트를 뒤졌다. 내 나이의 사람을 구하는 곳이 쉬이 없고, 막상 관심있는 곳은 내 이력으로는 갈 수 없는 곳도 많고, 이력서를 쓰려고 하면 허들에 막히듯이 턱턱 걸린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나는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최근은 감정기복 없이, 손에 땀이 나거나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지 않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너무나 평이한 날들이어서 일기랑 기도를 건너뛰기도 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회사도 다닐만하고, 다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평소 인사 안 하던 사람들도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마음 속은 갈팡질팡이다. 


이렇게 괜찮은데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가, 회사를 다시 다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여오고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한 독자분이 댓글을 다셨는데, 오랜 우울증 약 복용 환자로서 다시 취직했지만, 일상이 쉽지 않아서 퇴사하고 싶다고, 너무 괴롭다고 하셨다.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괜찮지만 무엇을 한다고 생각만해도 너무 무섭고 두렵다. 새로운 회사에 간다고 해도 내가 잘 할 거라는 자신감이 안 생긴다. 그냥 세상사가 다 자신이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울증과 조울증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았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움도 없었다.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고, 프리랜서를 하면서 어려움은 좀 있었지만, 그 끝에 취직을 해서 부족하지는 않게 살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도 넘치지는 않지만 어려움은 없는 정도로만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까 불안하기 그지없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혹시 그런 사람이 될까봐 너무 무섭다. 쿠팡 알바자리도 신청해봤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단순노동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좋을수도 있다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어딘지도 알았고, 어떤 업무들이 있는지도 알았으니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쿠팡 알바도 나가봐야겠다. 막상 업무들을 보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괜찮은 날을 보내면서도 불안을 찾아다니는 사람같다. 씩씩하게 다가오는 인생을 맞이하고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기를 염원했는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겁이 난다. 신랑은 차분하게 알아보라고 기운나는 말을 해주지만, 내 마음이 바쁘다.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내가 이런 상태로 새로운 회사에 간다는 건 사실 상상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얼마나 불안에 떨다가 수익구조를 만들어내게 될지 걱정이 한 가득이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 보름 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