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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삼 Jun 23. 2022

되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들

내 인생은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이 전화, 받을까 말까’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소중한 사람의 전화조차 망설여졌던 때가 있었다. 가볍지 않은 통화라는 걸 알고 사실 좀 부담스러움을 느꼈었는데, 고민하다 받고 나누었던 그 1시간 대화가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아보면 그때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는 도통 기억이 안 나고 그 사람과 했던 대화만 남았다. 갈수록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참 받길 잘했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은 풍요로웠다. 한 달 후, 1년 후인 지금은 더욱더.



‘저는 바빠서 여행 못 가요.’


너무 바빠서 여행을 도저히 못 가겠던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바빴던 일은 또 도통 기억이 안 나고, 조급한 마음이지만 짬을 내서라도 다녀온 여행의 기억만이 남았다. 그 해를 대표하는 기억이 될 정도로. 그 장소에 가면 그때의 웃음소리가 선연히 피어오르는 듯하게 그렇게 진한 기억으로 말이다.










우리는 왜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일까? 되돌아보았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큼직한 기억으로 마음에 남은 것이 있다. 그것들이 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면 ‘남는 것들’이란 그런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것들. ‘아 이게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었구나’ ,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느끼는지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나는 기억에 의존해서 중요한 것들을 판단하는 편이다. 내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을 때, 혼란스러울 때. 그럴 때 나는 눈을 감고 과거를 되돌아본다. 한 해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마치 거름망에 거르듯 기억들은 촘촘히 걸러져 가장 짙은 것만이 손안에 남는다. 되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되돌아보며 알게 된 것들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무언가 너무 바빠서 소중한 사람과의 전화를 받지 못할 것 같을 때는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다. 1년 후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내가 무엇으로 바쁜 건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웬만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 연습을 할 것. 둘째,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지금이 너무 숨 가쁘게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을 비워본다. 셋째, 여행을 갈 때는 무작정 유명한 곳에 가기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직접 찾아갈 것, 내가 직접 겪을 것. 소박한 곳에서 함께 간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할 것.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마음에 남는 것은 직접 찾아간 오두막집에서 나눈 대화였다.










작년에 했던 여행이 떠오른다. 유명하다는 여행지, 유명하다는 음식점, 예쁜 옷 쇼핑, 여러 가지들을 했지만 잘 기억이 안 난다. 누군가를 따라다니며 명소에 찾아갔던 것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고즈넉하고 나무 냄새가 나던 카페였다. 등은 어두웠고 우리가 앉을 테이블은 나무 빛을 띄며 카페에는 우리와 주인장밖에 없었다. 세 명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갔던, 조금은 아쉽던 그 카페 ㅡ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아이러니하게 그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오후 4시 무렵의 분위기는 해가 퍼지듯 은은하게 마음을 풀었다. 무슨 메뉴를 시켰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커피잔을 둥글게 손으로 말아 감싸며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눈에 힘을 주었다. 한 모금 목을 삼키며 흐르던 대화의 흐름이 기억난다. 온전히 빠져들며 머릿속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가듯 그렇게 나는 대화에 집중했다. 그 사람과의 대화는 뭉클한 감동이 되어, 미래에 대한 다짐과 꿈,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남겨주었고, 그 여행의 하이라이트 순간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함께 갔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순간은 같았다. 여행이라는 찰나 후 우리의 마음속에 남은 그림의 풍경은 비슷했던 것이다. 낯선 곳에서 들을 수 있던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 마음속 깊숙하게 자리 잡은 기억은 그렇게 같았다. 원하던 카페에 가지 못해 발걸음 닿는 대로 들어갔던 그 카페, 이름 모를 그곳에서의 풍경만이 가슴속에 진하게 남았다.



무엇이 기억에 남는 걸까, 무엇이 마음속에 남는 기억이 되는 것일까? 우리의 순간을 남기는 것은 남들이 유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호화스럽거나,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들은 아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 내 마음을 따른 것들이었다. 어떤 경험이 기억으로 남았을까, 되돌아보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내 인생에서 하이라이트가 도리 것들은 남들을 따라간 길이 아니라, 오히려 소박할지라도 내가 직접 해낸 것들, 내가 좋아서 해낸 것들, 어쩌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있다는 것을. 소박하더라도 나의 발걸음이 진심으로 닿은 곳에 있었다. 사람이 남고, 대화가 남고, 진심만이 남았다.







우리는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




체사레 파베세 cesare pavese







기억에 남는 것은 총량이 아니다. 양적인 것이 아니다. 생산성이 높다고 해서, 무언가 남긴 양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여러 가지를 하는 것보다 만족할 만한 한 가지, ‘하이라이트’를 잘 남기며 살아가는 게 중요했다. 기억에 진짜 ‘남는 것’들은 그런 것이니까. 여행에서의 하이라이트를 찾는 것은 인생의 하이라이트와도 닮았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나는 어떤 여행이 행복할까.라는 고민은 나는 어떤 인생을 살 때 행복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많은 것, 유명한 것이 아니라, 내 행복의 기준을 따른 ‘제대로 된 한 가지’가 더 중요했다.



시간관리, 생산성이라는 키워드가 핫하다. 나 또한 관심이 많은 키워드다. 생산성을 추구하다가도, 가끔은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투 두 리스트를 최대한 많이 해내는 인생을 살고 싶은 걸까? 시간을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시간관리를 왜 하는 걸까? 왜 피드백을 굳이 하려는 것이지? 왜 일기를 쓰려는 것이지? 왜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하려고 하는 것이지? 결국 이것의 답은 ‘남는 인생’, 마음에 남는 인생, 행복한 인생이 되기 위함이었다. 돌아보았을 때 남는 것들이 많은 인생. 행복한 기억들이 많은 인생 말이다.



생산성이라는 이 딱딱한 글자는 사실 알고 보면 가장 근본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유한한 인생에서 더욱더 소중한 시간만 남기고 싶은 절절한 욕망, 그런 것들 말이다. 바지런히 과거를 돌아보던 중 알게 된 것은, 사람이 남고 경험이 남았다. 남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따라가던 것이 남았다. 돌아보고 남기고, 돌아보고 남기며. 이렇게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을 파악하고 있다. ‘내가 이런 일에 기뻐하는구나’, ‘내가 이런 일을 가치 없게 여기는구나.’ 이런 것들을 말이다. 조금 더 본질을 찾고자 한다. 되돌아보는 것, 피드백하는 것은 더욱 소중한 인생을 살기 위함이라고. 되돌아볼 때만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보고 현재의 삶을 미래의 돋보기로 바라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오늘 나는 정말 행복한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며 현재를 바라볼 과제가 남았다. 이상하게도 소중한 것들일수록 자꾸만 뒤로 밀린다. ‘나중에 해야지’ ‘지금은 바빠’ ‘지금은 못해요’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바쁘다는 이유로 사람을 제쳐두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 인생이 어떠한 자잘 자잘 한 것들에 묻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진정으로 나 자신이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시간관리라는 말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감성적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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