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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쥔 여자" - 김애란 <칼자국>

《인문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 서평집 중에서

by 옥돌의 책 글 여행


"칼을 쥔 여자"


- 《인문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 3장 사랑을 탐구하다, 7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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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칼국수에 계절이 따로 있을까. 쫄깃한 면발, 빨갛게 양념 범벅 된 겉절이를 입안 가득 밀어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수북이 담긴 바지락을 부지런히 집어와 알맹이만 골라낸다. 추임새를 넣듯 중간중간 양손으로 그릇을 감싸고 후루룩, 국물을 들이마신다. 바다 내음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스며든다.
사는 건 이런 맛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손맛에 온기가 살아난다. 김애란 단편소설 「칼자국을 읽고 난 후 드는 생각이다. 「칼자국」의 주인공 '나'는 칼을 쥔 어머니가 만들어내던 칼국수를 회상한다. 자기 입으로 김치와 함께 들어오던 어머니의 손가락 맛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가 김애란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에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 다수의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바깥은 여름』 등이 있고,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칼자국」은 이십여 년간 시골에서 국수를 팔며 주인공 '나'를 키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는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여자다. 긴 세월, 자루는 몇 번 바뀌었으나 칼날은 그대로인 칼을 쥐고 오랜 시간 칼국수를 팔아 자식을 키웠다. 어머니는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았다.
말수가 적어 착한 사위 소리 듣던 아버지는 거절을 못 하는, 좀 난감한 사람이었다. 칼 잘 쓰는 어머니가 오랜 세월 자르지 못한 건 단 하나 부부의 인연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가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간다.

"나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정박아처럼 굴었다. 어머니는 내게 질문받는 걸 좋아했다. 나는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 이따금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사준 칼을 쥐고서였다. 좋은 칼 하나라던가 프라이팬 같은 것이 여자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기 위해 자취생활을 한다. 자취하며 사소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조리법을 묻는다.
그렇게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머니에게 당연시하며 받아왔던 것들에서 사랑과 희생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품 안에서 벗어난 딸에게 질문받는 걸 좋아하는 어머니의 소박한 기쁨과 애정을 상기한다.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마트에서 골라준 좋은 칼을 쥐고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 어머니가 느꼈을 기쁨의 의미를 깨닫는다.

단편소설 「칼자국」은 긴 세월 칼과 도마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상기시킨다. '나'의 어머니이자,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어머니의 삶이 칼과 도마 위에서 가슴 저미게 파고든다. 어머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아낸 세월이 전해져 온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친근한 일러스트를 곳곳에 배치해 삶의 한가운데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손안에 쥘 수 있는 분량으로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점이 돋보인다. 어머니가 그립거나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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