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파워가 중년을 건너가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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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과거와 현재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삼사십 대는 성공과 부를 얻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자영업으로 성공해 넓은 집과 중형차를 몰고 싶었고 일 년에 서너번 해외여행을 가는 걸 꿈꾸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결과를 위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사람들 속에서 과잉 경쟁하며 피로가 쌓였다. 나는 왜 이것밖에 이루지 못했을까, 누군가와 비교하고 자책하며 자신을 깎아내렸다. 결과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시간이 후회되는 마음도 생겨났다. 지나온 시간 속에 놓치고 온 것들이 떠올랐다.
그때 만약 다른 일을 선택했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에 이르자 마음 한쪽에 묻어두었던 꿈 하나가 아른거렸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문학과 관련한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던 시절을 상기하며 마음이 흔들렸다. 프리랜서로 수입을 창출하며 새롭게 자리 잡아가는 일이 불확실해 보였지만 고장이 난 브레이크처럼 마음이 앞서 달렸다. 한 걸음을 떼고 난 후에는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확고해지면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기 위한 규칙을 정했다. 어느 곳에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든 비교하지 않는 마음을 유지해 보겠다는 작은 다짐이었다. 삶 가운데 내 마음을 지속해서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가 비교하는 마음이었다.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빈번하게 불편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첫 시작은 가정에서였다. 형제자매 중에 자매는 언니와 나 둘뿐이었다. 사람들은 언니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했다. 그럴 때면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옆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어린 마음에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언니가 부러웠다. 나는 짱구 이마라서 야무져 보인다는 말을 듣는 정도였다. 드물게 칭찬을 받으면 가슴이 콩닥거리면서도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치부해 버렸다. 가족 간의 비교는 시작에 불과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비교하는 범위와 강도가 더 세졌다.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과 사회성까지 두루두루 갖춘 동료들과 비교되었다. 나도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비교하는 마음을 키우며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일은 좋으면서도 피로감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복잡한 감정을 끌어안고 괜찮은 척 살아온 지 오래되었다.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채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이런 불편한 감정을 덜어내고 살 수는 없을까? 어느 순간, 비교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면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을 바꾸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서 다시 조바심이 났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흔한 말도 위로되지 않았다. 이삼십 대똑같이 출발해도 속도의 차이가 나는데 50이라는 나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 불확실하게 다가왔다. 출발선이 다르게 느껴지며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말을 되뇌었다. '괜찮아, 늦었을 때란 없어,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거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차근차근 적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스스로 선물한 것이다. 나름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다. 주위에서 누가 등단을 했다더라, 출간한다더라 등의 얘기를 들어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않았지만,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나의 장점을 돌아보았고 실력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성실과 꾸준함을 무기로 성장하면서 칭찬받는 일이 종종 생겼다. 자신감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출발선은 달랐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자 먼저 달려가던 사람들과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유치원생의 눈높이로 초등학생을 우러러보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전히 나를 둘러싼 사람들 속에 독서력이 깊고 글발이 뛰어난 실력자들이 넘쳐났지만 비교하지 않으려고 매순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비교해야 할 대상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고 있는가에 집중했다.
비교라는 불편한 감정은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타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듯, 사람들도 혼자만의 비슷한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면 전혀
그럴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들조차 남들과 비교하며 자책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달려왔다. 남에게 신경을 쓰기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행복의 빈도수도 잦아졌다.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방해받는지 알아가며 나만의 규칙을 갖고 사는 일이 참 소중하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