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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귀가 있는 것이 감사하다.

by 이정원

얼마 전 친구들과 창원에 살고 있는 대학 동기를 찾아 1박 2일 여행을 다녀 왔다. 남자 여섯이 모여서 예전처럼 당구치고 야구도 보고 맛난거 먹고 술 마시고 이야기하며 이틀을 보냈다. 무얼 할지 미리 계획하지 않았지만 이틀 간의 일정들이 다 귀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우리가 그 때 함께 창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될 거 같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서 편의점 맥주에 거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수다 듣는 이야기를 했다. 한 밤에 불쑥 나가서 같이 산책하면 딸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부터 연애를 시작한 친구 이야기와 재수없이 구는 남자애들 얘기까지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 녀석 하나가 니가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좀 말이 없잖아." "니가? 에이.. 무슨"


늘 솔직하게 피드백 해 주던 친구가 정색하며 말해서 사실 조금 놀랐다. 진짜 그런가 하며 일상을 복기해 보았다. 그리고 되도록 많이 듣고 말은 줄이자고 늘 다짐하고 다짐하건만 여전히 잘 못하고 있구나 싶은 반성도 하게 됐다. 그러다 돌아와서 아내에게도 똑같이 질문을 했더니,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자기랑 있을 때는 자기가 주로 이야기하고 당신이 듣지 않냐며..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지는 서로 상대적인 거 아니냐고 일깨워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쌓이면 그걸 꺼내면서 정리하고 피드백도 받고 싶어 한다. 특히 나처럼 매일 나가는 직장이 없고 업무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적은 사람은 그럴 기회가 드물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지만 다들 입장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아무에게나 그냥 있는대로 꺼내 보일 수는 없다. 마치 묵언 수행처럼 나의 일상은 주로 듣고 생각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카페에서 하는 작업들. 늘 혼자라 말할 일이 없다.

그러다가 편한 친구들을 만나면,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가 쏟아진다. 평소에 고민했던 사안들 중에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장황하게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골프 스윙이나 장비 같은 취미부터 야구 농구 같은 프로 스포츠 이야기, 경제와 미래에 대한 복잡한 예상에 정치같은 민감한 문제까지... 티키타카가 잘 맞는데다 술도 한 잔 들어가면 수다도 그런 수다가 없다.


그러니 말이 없는 나도, 수다스러운 나도 다 나다. 들어주는 귀가 있어 그렇게 털어낸 덕분에 일상에서는 다시 많이 듣고 고민하는 나를 지킬 수 있다. 마음에 생각들이 익어가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지난한 수다를 들어주는 나의 들어 주는 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마음에 쌓인 이야기를 들어 주는 귀가 되어 주고 싶다.


귀는 두 개. 입은 하나.

나이가 들수록 말은 줄이고 많이 듣고.

조언도 충고도 결국 남이 하는 말이니.

잘 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말만 해도 남은 시간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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