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2022년에 Telsa는 미국 정부 당국으로부터 리콜 명령을 받았다. 대시보드 계기판에 표시되는 경고 문구가 법규에 위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소한 문제이고 소비자에게 영향은 거의 없지만 규정은 규정인지라 수정이 불가피했다. 더군다나 대상이 되는 차량이 2012년부터 판매된 Model S를 포함한 북미에서 판매된 전체 220만 대가 넘는 수량이었다. 일반 회사였으면 당장에 업그레이드로 수천억의 비용이 드는 엄청난 품질 이슈였다.
그러나, Telsa의 대처는 간단했다. 리콜 명령을 받고 며칠 뒤에 Telsa 차량의 소유주들에게는 안내 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 네트워크에 연결된 Telsa의 차량들은 모두 OTA를 통해 수정된 버전을 다운로드하였다. 누가 업데이트를 받았고 얼마나 남았는지도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OS로 통제하고 업데이트가 가능하게 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자동차의 기능들이 HW에서 SW로 중심을 옮겨 가게 되면 장점이 많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능들을 차에서도 가능하게 되는 것은 기본이다. 한번 차량을 판매한 이후에도 개선된 기능들을 수시로 업그레이드받게 함으로써 판매 후에도 계속 새로운 차로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결함이 발견되어도 Telsa의 사례처럼 금세 큰 비용 부담 없이 해결이 가능하고 사소한 버그나 결함은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도 수정해서 추후 발생할 수 있는 고장에 따른 위험을 예방할 수도 있다. 품질에 대한 결벽증 같은 관리의 필요성이 낮아지게 되면서 자율주행 같은 새로운 기능에 대한 시도도 더 공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런 SW의 유연함은 플랫폼이 단일화되면 더욱 힘을 얻는다. 스마트폰이 애플과 안드로이드폰으로 양분되게 된 배경에는 제작사가 어디라도 하나의 어플을 개발하면 동일한 플랫폼 안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든 강력한 플랫폼에 기반한다. iOS든 안드로이드이든 한번 만들면 여러 버전의 스마트폰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또 그렇게 사용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모인 데이터는 기능을 개선한데 바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개선된 내용은 플랫폼에서 같은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바로 업데이트되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런 지속적인 관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몰리면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은 더 늘어나는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한 곳은 중국이다. Huawei를 중심으로 하는 HIMA 그룹은 SW와 IT 기술을 기반으로 단순한 Tier 1에서 더 큰 플랫폼 공급자로서 여러 자동차 회사들을 아우르는 그룹처럼 활동하고 있다. 마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삼성 같은 스마트폰 회사들을 좌지우지하는 Google처럼 Huawei도 자율주행, 스마트카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내 자동차 회사들을 모아 규모를 통해 얻은 이익을 나누면서 변화를 직접 지휘하고 있다.
Huawei가 안드로이드라면 Tesla는 Apple에 가깝다. 최근 여러 가지 문제로 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순수 전기차를 가장 많이 만들어 판 회사는 Tesla다. 일찍이 중앙관리식 OS를 구성하고 각종 기능들을 자체 개발 개선해 가는 생태계를 구성한 덕분에 Tesla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 개선을 물론 FSD 같은 추가 수익도 얻는 방식을 정립하고 있다.
Huawei 같이 정부의 지원도 없고, Tesla처럼 단일화된 라인업도 없지만 유연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식한 유럽 자동차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VDA) 주도로 Volkswagen, BMW, Mercedes-Benz 등 유럽의 11개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참여한 공동 오픈 소스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완전 통합 오픈 소스 스택을 적용한 차량 출시를 목표로 공동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ISO 인증 준비, 2026년 전체 스택 공개 등 단계별 계획을 밝혔다. 지금껏 보안 문제와 특허 등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하드웨어와는 달리 유연할수록 더 강해지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느끼고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여러 브랜드가 자동차 운영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이를 운영할 전장 아키텍처를 공동 개발하면 우선 막대한 개발비를 나눌 수 있다. 쓰는 사람이 많아지니 개별 SW의 성능도 상향 평준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시스템이 일원화되면 부품 회사들도 개별 회사들에 맞춰 중복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여러 차종에서 빠른 검증을 통해 품질 수준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차량 SW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를 취합해서 공동 활용하면 인공지능 학습 같은 기능 개선의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유럽의 연합에는 Valeo, ZF 같은 부품 업체들도 소스를 오픈하고 공용 모듈 개발 구상에 참여한다고 한다. SDV 시대를 위한 합종연횡은 단지 자동차 회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ZF는 다른 한편으로는 직원의 4분의 1을 정리해고하는 구조조정도 단행할 예정이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으로 설명하기에는 근래의 자동차를 둘러싼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는 부담스러울 만큼 빠르다. 변화의 압박은 강하고 그런 변화를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비싸고 어려운 상황에서 유럽, 중국 등 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경쟁하던 회사들이 힘을 합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고 또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자동차산업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유형의 HW와는 달리 무형의 SW는얼마든지 공유가 가능하죠. 그렇게 사용자를 늘리고 경험을 공유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중국과 독일의 이런 움직임을 보며 우리는 어디즈음 왔나 돌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