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사의 소중한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이 한 마디에 왜 그리 화가 났을까
얼마 전에 고객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고객사 담당자와 만나 프로젝트 내용을 정리했다. 프로젝트 공고를 위한 제안 요청서 만드는 것도 내가 도와주었다. 이렇게 미리 준비했던 내용에 맞춰서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업체 선정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귀사의 소중한 제안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메일을 받았을 때, 모처럼 화가 많이 났다.
우리 회사로서는 이 프로젝트를 꼭 따내야 했다. 이 고객사에서는 우리 제품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데, 마침 구독 연장 계약을 슬슬 준비할 때가 되었다. 이번에 구독 연장 계약을 할 때, 우리 회사가 여전히 고객사와 함께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근거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제안서를 만들고, 입찰 금액도 절반이나 할인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 업체로 선정이 안 됐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일 때문에 화가 났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금 회사 들어온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일이 잘 안 되어서 화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업계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니 내가 뭘 하든 모르는 것, 못 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종종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았을 때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그것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반성하고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정확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문제를 틀렸을 때 화가 많이 났다. 아마도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을 거부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프로젝트 제안 결과를 보고 화가 난 것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제안서를 준비하면서 그렸던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는지 아닌지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한 번 더 확인했다.
한편으로 이제는 회사 일을 '나의 일'이라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대표님이나 팀장님이 큰 방향과 세부 내용을 정해주시면 나는 그들의 손발이 되어 실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하는 것일 뿐, 진정 내 일을 한다고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 제안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준비하면서 내 일처럼 느끼게 되었고, 그런 만큼 꼭 해내고 말겠다는 승부욕도 생겼던 것 같다. 일에 대해서 이렇게 승부욕과 책임감을 갖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사업을 그만둘 때 나는 이런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일이 책임감의 크기만큼 잘 안 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힘들어졌다. 그래서 지금 회사 들어와서는 그런 책임감 없이 일하려고 했다. 그저 누군가가 '이거 해주세요' 하면 '여기 있습니다' 하고 가져다주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3년 반 정도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만큼 삶에 열정도 재미도 없어진 것 같다. 자극에 반응만 하는 아메바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일이 잘 안 되어서 화가 난다는 건 열정이 어느 정도는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