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그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
예전에 링크드인에서 누군가가 쓴 글을 하나 읽었다. 그는 '일은 원래 즐거운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글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일이 즐겁다고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일이 재밌다거나 즐겁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직장인을 다루는 밈들을 보면, 회사 다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출근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다. 그런 걸 보면 일은 좋아하기보다 싫어하기가 훨씬 쉽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한 때는 나도 일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까지 차렸다. 그 회사에서는 뭘 하든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일하는 모든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꿈꿨던 것만큼 회사가 잘 되지 않았다. 큰 용기를 내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는 일을 한다는 게 그저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온 마음을 쏟아서 일을 해봤자 내 손에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까닭이다. 이제는 일이라는 것에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몇 달 정도는 그저 받는 만큼만 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회사 일이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거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의 느낌이 좋았다. 그런 순간이 많아질수록 일이 좋아졌다. 그 느낌을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다. 어쨌거나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돈 받고 대신해주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어쩌면 일을 좋아했다가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상처받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일을 싫어하면서도 즐거워하는 그 미묘한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다.
내가 맡은 고객사는 때때로 직원들에게 특별 휴가를 준다. 설이나 추석 연휴 끝에 하루를 더 쉬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이브부터 1월 1일 사이의 며칠 동안에도 고객사는 직원들에게 특별 휴가를 주었고, 나와 함께 일하는 고객사 담당자들 중 대부분이 연말 휴가를 떠났다. 고객이 일을 하지 않으니 나도 할 일이 없었다. 모처럼 포털 사이트의 뉴스들을 기웃거리거나, 회사 앞 카페에 나가서 커피 한 잔 놓고 멍때리거나 했다. 영업팀으로 옮기고 나서 이런 시간을 보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도 며칠 지나니까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졌다.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누군가의 메일에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아쉬울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게 참 서글펐다.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누군가가 나를 자극했을 때 그에 대해 반응하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극과 반응만 있는 생물이라니, 아메바랑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이제는 꽤나 잘하게 되었다 싶었는데, 그렇게 성장해서 고작 아메바가 되었다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로부터 한동안, 마치 사춘기처럼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자극과 반응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있는 건 있다고, 없는 건 없다고 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는 아메바에 멈추지 말고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전히 자기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삶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은 원래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