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전과 성장에 대해서
얼마 전에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스카이팀에 합류하게 된 기념으로 큰 이벤트를 열었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대략 3주 정도) 안에 스카이팀에 소속된 15개 항공사의 비행기를 모두 탔다는 것을 인증하면 100만 마일리지를 받는 이벤트였다. 100만 마일리지를 돈으로 따지면 4000만 원 정도 된다. 항공 마일리지라는 걸 쌓아본 적이 없어서 찾아보니, 장거리 노선을 비즈니스 석을 타고 5번쯤 왕복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을 만큼 큰 돈이었다.
어떤 유튜버가 이 이벤트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그러고 얼마 뒤 그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며 이벤트에 도전하겠다고 공지했다. 결국 그는 스카이팀 15개 항공사의 비행기를 모두 타고 이벤트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우여곡절을 생생한 영상 기록으로 만들기도 했다. 몸살에 걸릴 정도로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큰 돈을 벌게 되어서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부러웠던 것은 따로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컨텐츠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몇년 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그만두고 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정하기 위해 한참 고민했다. 생각해본 결과, 나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걱정이 없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출세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다. 그저 인연 닿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서 수다떠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 외의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한다. 그렇게만 해도 시간은 잘 간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그릇이 크지 않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그릇만 채워지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애초에 대학 졸업하자마자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내가 누군가의 성장에 도움을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그 때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공부하고, 더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일을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과정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남들이 하지 못했던 나만의 경험을 전하면 좋겠으나 그럴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남들과 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나 나름의 관점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만 있어도 좋겠다.
지난해 봄에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미국에 일주일 정도 출장을 다녀왔다. 내 인생 처음으로 아시아를 벗어나서 멀리 나가보는 것이었다. 하고자 했다면 그 일주일 동안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미국에 처음 가는 것이다 보니, 무사히 갔다 오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었던 탓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는데, 막상 돌아와서는 아무 이야깃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무척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그 아쉬운 마음이 새삼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올해 미국에 한 번 더 가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에는 회사에서 비용을 다 대주었지만, 그런 혜택을 2년 연달아 바랄 수는 없었다. 올해는 대담하게 내돈내산으로 다녀오려고 한다. 작년과 같은 도시에서 같은 행사가 비슷한 기간 동안 열린다. 만약 여행을 가려고 했다면 같은 곳에 두 번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출장으로 가는 것이니 만큼, 이번에는 작은 것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아무리 돈 욕심이 없다고 한들, 미국 한 번 다녀오는 데에 수백만 원이나 쓰는 게 아깝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출장에서는 꼭 그 만한 값어치를 찾아오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마흔 살이 다 되도록 멀리 나가볼 생각을 한 번도 못 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처럼 덜 발전한 곳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학생 때 배낭 여행으로라도 많이들 가본다는 곳조차도 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그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이 새로운 것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도전이랍시고 했던 것들은 사실 '할 만하다' 싶은 것, '실패하지 않겠다' 싶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안전 지대(comfort zone)에 한 번 들어서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나는 물질적인 욕심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나는 먹고 사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하고 불안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먹고 살기 불안할 만큼 큰 변화가 생길 만한 도전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내가 그 여행 유튜버였다면, 그런 도전은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업에서 IT업계로 커리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 중의 대부분은 가르치는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적당히 먹고 사는 정도로 만족하는 삶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삶을 마무리할 때, 미련이나 후회 같은 건 최대한 안 남기고 싶은데, 이렇게 쭉 살았을 때 미련이 안 남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성장에 도움을 줄 때 보람을 느낀다. 영업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매출과 고객의 성장을 최대한 함께 고민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려면 나부터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성장하면서 배운 게 있어야 남한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완결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껍데기에 만족하면서 그 껍데기를 깨고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쭉 살았을 때, 과연 나중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 당분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