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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Sep 13. 2019

100% 자기만족을 위해 씁니다

 아침 산책을 하며 온 동네의 고요함을 여유롭게 느껴본다. 세상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아침이라니. 가을 아니랄까 봐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바람은 또 왜 이렇게 기분 좋게 불어 주는 건가. 간지러울 지경이다.

 

여느 때 같으면 출근하는 차량과 등교하는 아이들로 붐빌 거리지만 오늘은 조상님들께 차례상을 올리고들 계실 시간이 한산하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대부분인 탓에 오늘은 이 도시가 어딜 가나 조용할 것이다. 나는 이런 조용한 날이 좋아 명절이 너무 좋다. 부모님 계신 부산엔 명절 끝나고 거리가 덜 붐빌 때 가야지. 자유로운 영혼이라 내 맘대로 산다.


산책길에서 돌아오는데 알람이 울린다. 브런치 새 글 알람.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글이 올라왔나.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글을 쭉 읽는데 불현듯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글이 너무 안 써지고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괜한 일을 벌이나 싶은 생각에 많이 지치고 낙심했던 어느 여름날 밤. 내가 왜 글을 쓴다고 했었나를 되짚어보며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쓰면서 밤 12시를 넘기고는 시계를 보며 피식 웃었더랬다. 그냥 좋아서.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정말 그냥 좋아서.

낮은 조명을 켜 둔 어둡고 조용한 거실 탁자에 앉아 한참을 노트북 모니터 화면만  물끄러미 쳐다보다 갑자기 글자들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그러다 다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노트에 연필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이리저리 뒤척이듯 글을 쓰며 그 늦은 밤까지 혼자 그렇게 몰입해있는 내 모습 자체가 그냥 좋았다. 사실 어두운 밤,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내지 옆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왠지 멋있어 보이지 않던가. 지금 내 모습이 그렇다니(어차피 보는 사람 없으니 그렇다고 믿으면 그뿐), 꽤 근사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쨌든,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나는 100% 자기만족에 의한 글을 계속 기로 했고 지금도 물론 그런 이유로 쓴다. 그래서인지 쓰면 쓸수록 신기하게도 자꾸 안 보이던 것이 보였고 안 느껴지던 것이 느껴졌다. 바로 '나'였다. 나의 감정에 대해, 그리고 내 생각에 대해 더 관찰하게 되었고 그것 나에게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 안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못 느끼고 있는지. 대신 타인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이 사람은 이걸 싫어하나 봐', '이건 좋아하나 본데?', '저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인가 보네?', '태생이 다른가?'... 다 쓸모없는 관심 조각들이었다.


 그런데 내 삶을 두고 글을 쓰다 보니 그런 버릇들이 많이 바뀌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집중들이 온통 나를 향하게 되었다.

'아, 내가 지금 이걸 좋아하고 있구나', '내가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이럴 때는 내가 위축감을 느끼네?', '이렇게 하면 내가 행복해하'...

그렇게 나에 대해 관찰하고 점점 관심을 쏟게 되자 순간순간의 내 삶에 더 충실해지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스스로 매 순간순간 진실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고, 그래서 진실한 글들을 남기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에게 댓글을 달아보았다. 지금 모습 자체가 멋있으실 거 같다고.

 사실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의 글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댓글을 잘 달지는 않는 편이다. 프로필만 봐도 내 병명이 나오니 내가 낯설 그들에게 괜히 그런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는 않아서.(어서 프로필을 바꿔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최근에는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댓글로 달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소중한 감정을 그냥 매장시키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서 말이다. 후아-.

뭐, 워낙 댓글이 많이 달려 답글은 없었지만 용기를 주고 싶은 내 감정을 잘 전달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했다.

 

 자기 삶을 두고 글을 쓸 때, 사람은 자신을 관찰하게 된다. 지나온 시간이든, 현재의 시간이든 그 모든 게 글의 소재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먼저는 자기를 위해 글을 써볼 만하다고 늘 생각했다. 조금은 힘든 과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산을 넘고 글을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발견하면 그땐 '자기 자신'과 더 친해지는, 꽤나 큰 기쁨을 하나 더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열게 될 책방에서 나는 그런 모임을 꼭 열고 싶다.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이도, 어른도 모두 다 자기를 위해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는 모임. 인생의 하소연도, 불평불만도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생각들도 조금씩 조금씩 아름다워진다.  사이, 아주 서서히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도 성장하게 되니까 말이다. 자신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매일 나를 위해 산다. 그래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안다. 내가 다음에 열 모임에서 그렇게 자기를 위한 글쓰기를 널리 널리 알리고 싶다. 나처럼 글쓰기가 기쁨이 될 사람들이 그중엔 분명 있을 것이다. 작은 동네 책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꿈꿔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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