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린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출간의 기쁨을 만끽하기 어려울 만큼 컨디션은 엉망이라 애석했다. 온라인 카페 회원들의 제보를 통해 책이 서점에 비치된 걸 확인할 만큼 건강상태가 저질이다. 그렇게 1주일간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우연히 한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출간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품고 있는 1인이었다.
"어떻게 에세이를 쓰게 되셨나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받으셨나요?"
"원고 보낸 후에 책 나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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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책 한 권 내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는 미리 준비한 듯한 질문들을 차례차례 건넸고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하며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 그리고 그 기억과 함께 누렇게 빛이 바래가는 첫 마음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다.
5년 전이었다. 항암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나와 똑같이 까까머리를 하고 있는 또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도 나도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항암 어린이들이었다.
우린 어느 날, 사뭇 진지한 주제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다행히 8인 병실에는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 결혼에 대한 생각, 각자의 치료 상황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린 운명적인 대화에 이르게 되었다.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꿈'에 대한 이야기.
"넌 치료 끝나면 뭐하고 싶어?"
"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결혼할 대상을 찾겠다도 아니고, 받은 보험금을 투자해 수익을 낸다거나 사업을 한다는 것도 아닌, 너무 엉뚱하게 들린 나의 대답에 그녀는 다시 물었다.
"어떤 걸 하고 싶은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제 찾아보려고..."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무모한 소리였다. 정말 돈 안 되는 소리만 골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순도 100퍼센트 진심. 3년 뒤의 나는 그 말을 실천하고 있었으니. 그 사이 전이 판정을 받으며 1기 암은 4기로 파격적인 등업을 이루었고 그런 탓에 오리지널이 아닌 마음을 품고 살 어떤 이유도 없었다. 절박함은 가장 큰 나의 원동력이 되었고 도전을 머뭇거리게 했던 '겁'을 어느새 이겨먹고 말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기 전에 책 한 권 내는 것이 소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꼭 찾아보고 싶었다. 잘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 20대부터 앓아오던 허무병(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세상만사 허무하다 생각 들면 무기력해지는 병)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신통함, 그걸 하고 있으면 나 스스로 자아도취 비슷한 것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함(남들이야 뭐라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오묘함까지. 이 모든 것을 고루 갖춘 바로 그것 말이다. 나는 그걸 '찾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게 뭔지, 도대체 그건 어떤 촉감, 어떤 향과 맛을 가졌으며 나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이 모든 게 너무 궁금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애틋함으로 시작된 글쓰기였기에 치료는 이미 하늘에 맡긴 지 오래였다(이건 위험한 짓이라는 생각도 때론 들었으니). 밤잠도, 체력도, 재력도 다 쏟아부으며 서툴지만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며 두 해를 넘겼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거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하고 있었고 4번씩이나 간신히 고쳤지만 아무리 봐도 엉망진창인 듯한 글을 마주하면서도 "한 번만 다시 써볼래"라고 말할 줄 알았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너 아니면 안 돼', '한 번만 다시 기회를 줘' 같은 어감이랄까. 그런 감정, 처음이었다. 기껏 글을 앞에 두고 그 말을 하게 되다니.
게다가 평소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할 때면 늘 위축되어 버리고 스스로 실망하기 바빴는데 이번엔 다르다. 분명 못 하는데,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데 부끄러움보다는 스스로 괜찮다고,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거라고 셀프 격려까지 하는 모습이라니. 절망적인 순간에도 '다 때려 춰!'가 아닌, 뭔가 고급스러운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증상,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는 '좋아하는 일' 그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군데군데 깊이 파인 자존감의 상처들을 낫게 해 주는 신통함, 글 쓰는 순간만은 내 모습이 좀 멋있어 보이더라는 자아도취적 신비함, 죽는 순간까지 어디 한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포기를 모르고 덤비게 하는 오묘함까지 이 모든 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꿈'이란 놈인가 보다.
그 기억들을 상기하며 인세에 대해 묻는 그녀에게 똑 부러지게 말했다. 만약 글을 쓰고 싶은 생각보다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더 큰 비중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책을 써서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생각은 너무너무 위험한 일이고 마케팅 구조가 프로페셔널하게 조직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럴 일이 없으실 거라고. 냉철하게 들렸겠지만 글쓰기 초보 작가가 큰돈을 들여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에 겪지 않아도 될 좌절을 막고 싶었다. 나 또한 생계를 위해 수익을 꿈꾸긴 했지만 시장을 확인한 후 제일 먼저 내려놓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수익은 부수적인 일 일뿐 지금 내가 달려갈 목적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확실히 해뒀다. 남은 여명에 대해 고민하는 특수 처지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당장 그만뒀겠지만.
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꿈이었다. 잘 하건 잘하지 못하건 오랜 시간 함께 정들어 갈 만한 무언가를 간절히 찾길 원했고 찾고 보니 그것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았다. 누구나 가슴속에 꿈 하나를 가지고 있다 말들 하는데 내 상황은 비록 이렇지만 이 순간, 나도 그런 누구나에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다양한 모습으로 도전하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나의 출간 소식이 작은 응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책의 내용보다는 (결코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없기에) 보잘것없고 결핍 투성이었으며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가련함까지 골고루 갖춘 어느 아무개가 어떤 도전을 하나 해서 이뤘다는 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컨디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그 마음이 많이 식어서 첫 마음이 많이 그립다. 어딘가 무모하고 허무맹랑한 듯 들리는 돈 안 될 소리 같은 그 마음 말이다. 알싸했던 그 맛을 이제 다시 찾을 때도 된 듯하다. 체력을 다시 조금씩 더 키우며 워밍업 해봐야지. 기껏 이 정도 글을 썼는데 오늘은 여기 까지라는 듯 머리가 묵직하게 띵해온다. 체력 고갈을 알리는 신호다. 한창 원고를 쓸 때 자주 느꼈던 바로 그 두통 증상. 오랜만에 만나는 이 녀석, 살짝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