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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May 04. 2020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코로나로 개학이 연기된 채 몇 달을 집에서 보내는 아이가 눈에 밟혀, J언니는 이번주 내내 아이와 함께 지내려고 커다란 트렁크가방 2개를 끌며 그녀의 딸인 M양과 함께 숙소로  입성하셨다. 서울이 본가인 그녀는 평일에만 이 집 방 하나를 쓰고 있다. 

 타 지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엄마를 둔 덕에 낯선 집에서  룸쉐어 라이프스타일도 경험하고 엄마와 함께 정규직 직장체험도 하니 꽤 알찬 프로그램. 녀석은 전혀 지루할 리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우리 집에는 녀석의 로망인 고영희 씨도 살고 있는 터. 재잘재잘 한창 말 많은, 전형적인 귀여운 6학년 '어린이'에게 이곳은 놀이터로 안성맞춤일지도.


 그러나 엄마는 다른듯 하다. 그렇게 딸과 함께 출퇴근까지 함께 하며 딱 붙어 다닌지 5일째인 금요일 저녁. 역시나 딸과 함께 퇴근한 J언니는 잠시 식탁에 앉아 한숨 돌리더니 아이가 방에서 냥이와 쉬고 있는 동안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한 마디 한다.


 "나 쟤랑 같이 일주일 내내 붙어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깊은 공감의 안타까운 웃음을 웃었더랬다. 그랬다. 이 코로나로 인해 힘든 사람 중 한 명은 어린이들의 '엄마'였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나의 시간'이라고는 화장실 가는 시간 말고는 가지기 힘든 사람 말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어리광이 많은 아이는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 시시콜콜 엄마와 티격태격 중이다. 다행히 눈치 빠른 고양이가 애교를 부려서 그나마 그 '어린이'의 관심을 다시 끌어준다. 하-요놈. 영특해 영특해.


 사실 J언니는 보통 일주일에 겨우 한 두 번 이곳에 왔고 거의 대부분 서울 본가로 올라가거나 출장을 다니는 바쁜 워킹맘이다. 그런데 그 한 두번의 숙박이 언니에겐 단순한 숙박의 의미는 아니었다.


 잠시 우리집 풍경?을 말하자면 거실에 티브이가  없다. 음악도 한달에 한두번 푹 빠져 감상하는 정도라 하루 종일 조용하다. 물론 노트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광경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드물다. 왜 그러는거냐고 걱정하지 마길. 정서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단지 오랜 암치료로 외부자극에 쉽게 피로해지는 컨디션을 고려한 것일 뿐이다.

  빛도 쨍한 형광등은 너무 밝다. 나에게 이런 빛은 때론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느낌이어서 차분한 전구색 전구로 몇몇을 교체해버렸다. 그래서 밤시간 우리집 거실은 그야말로 고요한 절간이다.

게다가 하나 더. 이 집에 말 없고 조용조용한 몇 살 어린 글 쓴다는 작가가 고양이랑 단둘이 살고 있다. 왠지 독서를 해야할 것만 같은 묘함과  참선을 해야하나 싶은 의구심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집이다. 실제로 이 집에 같이 지내는 또 한명의 언니는 이곳으로 들어와 지낸 후 한달만에 밤마다 아삭 아삭 즐겨먹던 좋아하는 간식도, 함께 해주는 이 없어 홀로 홀짝홀짝 마시던 캔맥주도 다 끊고 갑자기 퇴근 후  영어공부와 다이어트를 시작하셨다.


 말하자면 1년 전쯤 독서의 세계로 입문하신 J언니에게 이곳은 힐링 플레이스였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늦게 까지 혼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그런 아지트같은 곳. 게다가 거실에는 작가라는 사람이 잘 읽는 거 같지는 않은 몇몇 괜찮은 책들도 꽂혀있다. 독서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책이 갖추어져있고 조용히 혼자 오래도록 앉거나 누워있을 수 있는 곳이 최고의 명당이다. 이 집은 독서하기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엔 그런 모습을 단 하루도 볼 수 없었다. 멀리 가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 상, 그나마 타 지역이라고 온 엄마의 일터 지역에서 아이가 너무 심심하지 않도록, 무료하지 않도록 근처 가까운 지인들과 식사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아이의 만족을 위해 고양이를 기르는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매일 저녁 퇴근 후, 제2의 출근을 하며 지냈으니 지칠 만도 하다.

 

 엄마로서 지내는 시간들은 참 소중한 일상이고 행복한 시간임은 물론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함께 있기에 함께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과 정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혼자여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안과 만족도 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함께 누리는 감정이 소중한 만큼 혼자 누리는 감정도 너무나 소중하고 또 꼭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개성의 존재체니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독서모임에 오던 회원분이 생각났다. 집에서 읽어도 되는 책이다. 카페에서 읽어도 되는 책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저녁도 대충 간단히 때운 채 독서모임에 시간을 할애했다. 이유는 이 시간이 일주일 중 유일하게 힐링하는 시간이라고.

 아마도 그 시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책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어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책 읽는 시간이 세상 좋다는 또 다른 종족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항상 가족이라는 구성원 속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는 시간을 잠시 내려 놓고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 있다는 것. 꽤 근사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내지는 필요한 사람에겐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다.

 나에게 독서는 단순히 독서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나에게 베푸는 배려이고 존중이란 생각이 든다. 그걸 알기에 나와 같을 누군가에게도 그 시간이 더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고즈넉하고 정갈스러운 책방을 열게 되면 꼭 독서방을 마련해두려고 한다. 언제 와도 늘 한결같이 조용하고, 어떤 방해도 없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아늑한 자리가 갖추어진 독서방. 아- 생각만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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