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준 만큼 받아내는 처세술을 알려주는 자기계발류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좀 복잡했던 책. 저자 애덤 그랜트는 세상 사람을 기버(Giver), 테이커(Taker), 매처(Matcher)로 나눈 뒤, 기버도 성공할 수 있다고, 기버만이 성공을 독식하지 않고 전체 파이를 키워서 함께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짐작대로 기버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는, 테이커는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아내는, 매처는 준 만큼만 받으려는 사람을 뜻한다. 이용하지 않으면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남을 이롭게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기버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나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일 것이다.
저자는 초반 몇 페이지를 통해 그러한 인식이 사실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곧 반전이 펼쳐진다. 기버는 사회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질 가능성도 높지만 사회적 성공의 꼭대기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 역시 높다고. 그 이유는 결국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은 아침 먹고 나면 점심 먹고 나면 저녁 먹고 나면 도르마무 다시 다음 날 아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를 아주 유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자급자족 환경에서는 의식주를 모두 직접 해결해야 하며, 소고기 한 점 먹을려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인류는 협력과 분업으로 이런 비효율을 없애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모든 인류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저자 역시 이런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외과 전문의는 수술을 거듭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이 근무하는 '특정 병원'에서 시술할 때만 더 좋은 결과를 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습관 및 수술 방식을 잘 아는 간호사나 마취과 의사들과 함께할 때 더 익숙하게 솜씨를 발휘할 뿐이다. (124 페이지)
혼자 이직한 스타 증권 분석가는 1위를 차지할 확률이 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팀과 함께 이직한 스타 분석가는 1위를 차지할 확률이 10퍼센트로 이직하기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126 페이지)
비슷한 얘기가 '착각하는 CEO'에서도 나온다.
우수인재가 하이 퍼포머(High Performer)가 될 수 있는 힘은 그의 개인적 능력과 더불어 그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192 페이지)
하지만 '약육강식'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없다는 인식은 갈수록 흐려지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했던 경우는 세금 많이 내는, 한마디로 돈 많은 사람들 위주로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며, 그 능력과 열정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연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한 명 한 명이 모여 생업과 자아실현의 터전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낸 세금이 사회 안전 기반의 재원으로, 경제 활동의 밑바탕인 도로, 전기 등의 공공재로, 때로는 부실을 메꿔주는 '공적자금'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저축이 산업자금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나쁜 의도가 아닐 때도 자기 공로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141 페이지)
이러한 현상을 '책임 편향'이라고 하는데, 테이커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자신의 관점에만 집중하며, 타인의 관점이나 생각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소시오패스 같은 건가?)
분명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하지만 공생의 가치는 이제 공기처럼 너무 당연해서 무감각해진지 오래고,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사회에서 보고 듣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남의 이익을 가로채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이익을 절대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치열함을 담고 있다.
'잘해주면 기어오르니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말이 처세술이 되는 세상, 퍼주기 좋아하는 기버는 호구되기 좋은 세상, 테이커는 몰라도 최소한 매처는 되어야 생존에 유리할 듯한 세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승자독식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면, 성공을 바라보는 후세의 시각이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지금 우리가 기버가 되어야 하고, 기버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기버가 호구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아래는 그중 인상 깊었던 두 가지.
다양한 게임 이론 토너먼트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다는 일명 '팃포탯(tit for tat)' 전략. (323 페이지) 유명한 게임 이론 사례로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두 용의자 A, B가 있는데 자백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1. 둘 중 한 명만 자백할 경우 자백한 용의자는 석방, 자백하지 않은 용의자는 10년형.
2. 둘 다 자백하면 둘 다 5년형.
3. 둘 다 자백을 하지 않으면 둘 다 1년형.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은 3번이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결국 자백하는 게 각자에게 이익이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 그런데 팃포탯 전략은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호간의 신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으며, 단판 게임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게임일 가능성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배신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속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람간의 관계가 단판 게임으로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결정적으로 상대방의 평판을 통해 신뢰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성공을 공유하는 기버로서의 평판이 쌓인다면 해볼만한 게임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기버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신뢰하고 협력해야만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협력이 최고의 전략이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전략이 있을까? '심리학으로 보는 로마인 이야기'는 '팃포탯'의 한계를 이렇게 얘기한다.
결국 이 전략은 이기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게임을 하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설계된 것 (240페이지)
한 번 지는 것이 영원히 지는 것일 경우에는 이기려는 전략보다 지지 않으려는 전략인 배반을 택하게 된다. (241페이지)
결국 복불복(..)
테이커나 매처도 기버가 주류인 집단에서는 그 집단의 규범을 따른다 (358 페이지)
결국 테이커도 매처도 태어나면서부터 테이커나 매처였던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맞게, 생존에 유리하게 적응한 것일 뿐이다. 기버가 생존에 유리하다면 굳이 생존에 불리한 테이커나 매처가 되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버가 대세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다만 문제는 이런 거 아닐까? 기버가 되고 싶지만 상대가 테이커면 어쩌나 하는, 나만 먼저 패를 까보인 게 아닌가 하는 걱정,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나만 튀어 보일 것에 대한 두려움, 첫 빠따에 대한 공포.
왜 머리로 생각할 때는 그래야지 싶다가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아마도 몰살을 당해도 다 같이 간다는 ‘레밍효과’ 때문이 아닐까? 남들이 다 몰려가는 길에서 나만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억에 남는 문구를 남긴다.
우주 만물이 자기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