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첫 방문
"농장한번 구경갈게요"
지인들이 인사로 구경온다고 하는데 오늘 실제 지인의 첫 방문이 있었다. 무릉외갓집의 동료이자 연극인 한은주씨가 커피를 들고 온 것이다.
오후에 제주시 일정이 있어서 빠듯한 일정이다보니 커피 한잔 여유롭게 즐길 시간이 없어서 새싹을 돌보고 물을 주고 고추 모종 지지대를 묶고 살갈퀴 씨앗을 채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 바다를 보며 농사일을 하네요. 이 밭은 어떻게 구했어요?"
"지인분이 잠시 지어도 된다고 해서 재미삼아 지어보고 있어요"
은주씨는 신기했는지 물어보는데 나는 매일 보는 바다이고 또 하늘이다보니 별스럽지 않았다.
"바닷가 밭이라 농사짓기에는 어때요?"
"친구가 얘기하던데.. 서리가 내리지 않는 밭이라 농사짓기 좋다고 하더라구요"
은주씨가 한참을 보더니 옆밭은 양파수확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창욱씨 텃밭은 아기자기해서 방송에 나올거 같다나. 혼자서 일하다 친구가 오니 이야기 나누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몰랐다.
오늘은 어제 일군 두둑에 상추씨앗을 뿌렸다. 은주씨가 전해준 고수씨앗이 오늘 제법 싹을 틔워서 올라왔길래 보여주었다.
은주씨는 다음주 모노드라마 자청비 공연을 앞두고 소품을 옮겨야 하는데 혹시 내 트럭으로 옮겨줄수 있는지 부탁했다. 그와 무릉외갓집에서 일해오며 연극에 대한 열정을 잘 알기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혼자서 기획, 연출, 연기, 소품준비, 예산 등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고충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지금 내가 창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그가 텃밭에 커피를 들고 왔듯이 나또한 그의 연극을 위해 내 트럭을 움직일 것이다.
둘이 한참을 얘기했는데 바로 옆밭의 할머니들이 양파 파치를 좀 가져가라고 하셨다. 쌍알(알이 두개 붙은 것), 소짜(알이 작은 것), 왕빵(알이 너무 큰 것) 파치들을 담으니 큰 봉지 한가득이 되었다.
이웃에 공짜로 얻었는데 나는 무얼줄까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다. 다음엔 꼭 답례품을 준비해야 겠다. 간단한 사탕이라도.
돌아오는 길에 흰개가 도로 중앙에 죽어있는 걸 발견했다. 시신을 거둬주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누군가는 새로 이 세상에 오고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난다. 생명이 오고 또 생명이 갈때 예를 다할 수 있기를.. 그 의미를 되새길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