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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see Nov 04. 2016

학벌에 대한 단상

하필이면 왜 S, K, Y일까?

언론인 지망생들의 카페 다음 '아랑'에는 한창 학벌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발표가 된 SBS최종합격자와 관련해서 면접 때 좋은 학벌이 아니라며 차별을 받았는다는 글 하나가 도화선이 됐다. 이후 아랑에는 소위 스카이라 불리는 서울대, 연대, 고대가 아니면 사실상 기자는 힘든거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니고, 스카이가 아니라도 메이저 언론에 들어가는 사례를 들이대며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학벌은 중요할까?


기자지망생들은 논술을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논리'를 갖고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내가 느끼기에 면접장에서 차별을 받았네 하는 정도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언론사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하고 그를 기사로 풀어내는 곳이다. 방점은 '사람'에 있다. 사람을 만나는 행위는 무엇인가? "아, 너 부산 출신이야? 부산 어디? 해운대? 해운대 무슨 고등학교 나왔는데? 정말? 야 너 내 2년 후배였네.."로 이어지는 인간관계 소위 학연, 지연으로 사람과의 관계는 성립된다.


고작 3주차 수습인 내가 부단히도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기자는 사람과의 만남이 전부이며, 이 만남을 잘 유지하는 것이 취재에 도움이 되고 취재에 도움이 되면 좋은 기사, 먹히는 기사, 내 커리어를 살려줄 기사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선배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지면서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는 "어? 너 그 학교 무슨 과야?, 우리 경희대학교 모임이 있어!, 네 바로 윗 선배가 그 학교 나왔잖아" 등이다. 그리고 사는 곳. "강남 8학군? 어디? 정신여고? 오... 언제 한 번 서로 마주쳤겠네"다. 이는 회사 내 선후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현장에 나가 만나게 될 수많은 취재원들과 나의 관계를 정립하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인턴 때가 그랬다.


조선일보 인턴 때 법조 출입을 하면서 '장진영 변호사'라는 사람을 만났다. 지금은 국민의당 대변인으로 있다. 이 사람이 서강대 출신이다. 당시 1진 선배와 나 그리고 인턴 동기 총 세명이 이 선배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나온 말은 당연 학교. "어디 학교 출신이냐"는 그의 질문에 "저는 XX여대요" 동기는 "서강대학교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내게는 "어 그 KBS아나운서랑 같은 학교네요, 제가 얼마전에 그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방송 출연을 했거든요" 그리고 동기에게는 "어! 서강대? 무슨과요? 오, 그 교수님 잘 계시나? 하하하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나와의 대화는 방송출연 경험에서 끝났지만 그 친구와의 대화는 상당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학연, 지연이란 건 이런 것이고, 평등주의 사회와 학벌타파를 외쳐도 언론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간다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일인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 학교 나와서 유명 국회의원과 같은 학교라서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는 후배가 취재원과의 관계도 잘 정립할 것이고 인터뷰 하나를 따더라도 더 잘 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같은 삼류 쩌리들은 부단히도 '실력'이라는 걸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그런 학연, 지연 이야기가 나올때는 "응 그러냐"는 포커페이스 자세가 필요하다. 거기에 주눅드는 순간 나는 망한다. (그래서 술을 잘 먹어야 하는데 나는 술도 못한다. 앞으로의 생활이 참 아득해지는 요즘이다)


결론은 우리 사회 구조 자체가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대놓고 무시까지는 아니지만 쉽게 소외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를 취재하는 언론사라면 당연히 같은 실력이라면 스카이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진 명문학벌들의 사회와 명문학벌들의 언론인 구성들은 고착화되어 으레 "어 그 학교 출신이면 뭐,, 잘 하겠지"라는 믿음이 깔리게 된다. 그렇게 사회는 다시 고착화되고 스카이가 아닌 사람들이 메이저 언론을 갈 수 있는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학벌 지상주의의 당위성을 설명해 놓은 듯 보이지만 나는 학벌 지상주의에 반대한다. 내가 스카이가 아니라서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도 물론 한 몫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논리적인 이야기로 말해 보겠다.


언론은 이미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을 취재하는 곳이 아니다. 오늘 아침엔 대통령 기자회견을 취재하다가도 이따 저녁때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취재할 수도 있는 것이 기자다. 내가 명문학벌을 갖고 사회 지배층만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세계에 빠지다 보면 기자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얼마전 만난 M일보 기자 출신 S기업 홍보 팀장은 스스로 고백했다. "내가 청와대 출입하면서 있는 사람들만 만나다보니 어느새 나도 나 스스로를 뭐 좀 있는 사람처럼 느끼더라" 매번 여의도의 비싼 한정식집에서 점심 저녁 먹으면서 서민들의 라면먹는 하루를 취재하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보긴 힘들다. 실제로 조선일보 기획취재팀에서 있으면서 나는 불우이웃기사를 동정기사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느껴봤다. `


그래서 언론인은 거지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중간  학벌을 가진 사람도 기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명문학벌을 가진 사람은 느끼기 쉽지 않은 감정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벌을 중요시 여기는 신입사원 선발 문화는 잘못됐다. A, B, C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들을 대변하는 언론에도 A, B, C라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잡힌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12년 노력해서 스카이 학벌 딴 건 인정해 줘야 하지 않나요?"


글쎄.. 진심으로 노력한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도움 다 받으며 과외며 학원이며 다니면서 스카이 다닌 사람과 혼자 독학하며 노력했지만 중경외시밖에 못 간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설사 공부를 덜 해서 좋은 대학 못간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자신과 구분짓고 '나는 달라'라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좋은 언론인이 될 수 있을까.


분명 좋은 대학이 아니어도 메이저 언론에 간 사람은 많다. 나도 그런 희망을 품고 이 길에 들어섰고 내 능력만 있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수 없는 확률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 같다. 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좁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분명 되는 사람은 있다.


고로 학벌에 갇힌 나 자산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가자. 그러는게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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