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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Oct 19. 2023

벽 틈 사이에 피어난 풀잎

제발 살아남아줬으면, 꺾이지 마 잘 자라줘

"틈을 보이지 마요."
감사하게도 나를 사랑해 주는 그녀는 늘 나를 걱정했다.

그 말이 고르고 골라 내가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레 전한 말이라는 걸 알기에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서 배운 것은, 놀랍게도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한 노력보다 사람의 태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인즉슨, 나라는 인간에게 [틈]은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손톱 같은 것이란 말인데.

나의 틈은 누구든 손을 넣어 꼬집어 비틀 수 있을 만큼 모두에게 보였고, 실제로 그런 꼬집힘으로 인해 혼자 아프고 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처럼 틈을 보이지 않으려 무진장 애썼지만 요즘 사람같이 'MBTI'에 대입해 보자면 대문자 P인 나에게 틈을 보이지 않는 '계획'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 틈 때문에 꼬집히고 속상할 때마다 내 속엔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은 타인은 물론, 나에게도 향했으니 괴롭기만 했다.

물론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기에 고쳐지지 않는 내 모습도 내겐 마냥 아프기만 했다.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벽 틈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풀을 만났다.

"저런 곳에서도 기특하게 생명은 자라네요"
함께 맛집을 향해 걸어가던 과장님은 그 장면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걸 간신히 막고 재빠르게 카메라를 켰다.

누구도 저기서 풀이 자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 홀연히 날아온 씨앗이 딱딱한 시멘트벽에 탁탁 부딪히다, 그중 한 녀석이 저 틈 사이에 안착했으리라. 틈이 없었다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더라도 풀은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저 풀을 보며, 틈이 있는 나를 애써서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틈이 있기에 자라나는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틈이 있기에 틈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해보고 그 노력 앞에 무너지더라도 다시,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힘도 길러졌을 거라고. 그리고 '와, 진짜 영 안 되는 녀석이네.'라고 느끼는 날에도 '그러면 껴안고 살아가지, 뭐!'하고 다시 튼튼하게 일어서는 법도 배웠으리라고 믿고 싶다.

누군가는 공격하고,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틈에서도 생명은 더욱 강인하게 자라나고, 그 어떤 공격보다 강한 사랑들은 내게 닿아 그 덕에 움트고 있다고 저 시멘트 벽의 풀을 보 생각했다.

그래서 풀인지, 나인지 행가의 가사처럼 제발 살아남아줬으면, 꺾이지 말고 잘 자라줬으면.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고갤 들고 버티기를 바라는 맘이다.

여전히 틈이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또 어느 날엔 나의 틈이 너무 기특한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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