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 만들어지는 실질적인 과정은 사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어떨까? 말로 설명하기 쉽지않은 부분이니 각자의 미적감각에 의존해 알아서 해야만 할까?
그게 아니라면 이미 출시되어있는 럭셔리 브랜드를 참고하고, 트렌드를 따라가고. 정말 그런 방법 밖에 없을까?
가방을 보고 가방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의 결과물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바꾸거나 너무 똑같아 보이지 않기위해 수정하는 것이다. 일명 ‘어레인지’ 라고 하는 작업들. 당신이 학생이거나 신입일 경우 그 방법은 도움이 된다. 가방을 면밀히 관찰하게되면 보이지 않던 디테일들이 보인다. 가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부자재가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공부가 된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지 않나.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며 깨우쳐가는 것. 모두의 시작은 비슷하다. 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가 되고자 한다면(그것으로 돈을 번다면) 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하다.
레퍼런스에 갇혀 새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오기 어렵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햐얀 백지를 앞에 두고 디자인을 시작하려고 할 때 눈앞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해본적 있는지.
무엇부터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아이디어’ 가 있다.
가방이란 본디 무엇을 담아 어디로 옮기거나 그것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도구다. 이동을 위해 나의 소지품들을 수납한다. 그럴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방 디자이너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가방을 디자인 한다가 아니라 ‘누군가의 공간을 만든다’고 개념을 바꾸면 비로소 형태에서 자유로워진다. 갑자기 무궁무진한 창의성의 바다로 뛰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디테일은 그 다음이다.
가방은 퍼스널 사이즈가 없는, 어쩌면 가장 평등한 패션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몸에 피팅되지 않는다는 특성때문에도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다.
처음 내게 가방 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도 그런 의미에서었다. 담을 수 있는 공간만 확보한다면 어떤 형태라고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사용하는 사람을 배제한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이런 생각으로의 전환은 내게 엄청난 자유를 주고 창작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백팩이니 토트백이니, 가방의 형태나 아이템을 분류해놓고 거기에 디테일을 채우는 것만큼 답답한 건 없다.
공간을 확보한 어떤 디자인도 가능하다는 자유로움. 일단 거기서 시작해야한다.
사각진 틀에 함몰되지 않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