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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식사] 전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파올로 조르다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NEL CONTAGIO)

작년 이맘 때쯤 이름도 생소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네 삶의 문을 두드렸다. 비행기로 두어시간 걸리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거리인 우한 시내가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한국 내의 인식은 미미했다. 그 후 중국 전역을 넘어 우리 나라에서 감염자가 등장하여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까지도, 우리는 그래도 여름이 지나면 이 답답한 마스크를 벗는 삶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불투명한 희망을 가지고 힘든 시간을 버텨냈으며, 아마 다른 사람들 또한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작년 3월 초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 서던 사람들  [사진 출처: 중앙일보]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2019년 등장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해가 두 번이나 바뀐 2021년에도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은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마스크를 끼는 불편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이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수 년간 일궈온 삶의 목표와 터전을 잃었고, 사랑하는 생명을 떠나보냈다. 우리는 정말로, 전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염의 시대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함께할 자유'를 잃었다. 적어도 두어 달에 한 번은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면서 진행되었던 이 북클럽도 각자의 집에서 ZOOM으로 이루어졌다. 너무도 먼 미래의 일일 줄만 알았던 재택근무와 온라인 모임은 '함께할 자유'의 빈 자리를 채우며 자연스레 우리 삶에 스며들었다. 

각자의 집에서  음식과 함께 진행된 온라인 ZOOM 북클럽



이 글을 쓰는 오늘,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도 여전히 하루 종일 여러 통의 재난 알림문자가 내 핸드폰을 울렸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단지 그것이 조금 짧기만을 바랄 뿐 우리는 변함 없이 전염의 시대 안에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말마따나, "우리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고립되었다." 나는 종종 마치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기한 없는 외출금지(grounded) 벌칙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재택 근무를 하고, 과거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요리를 해먹기 시작하고,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숨겨져 있던 자유를 찾았지만, 문 밖의 삶은 모든 것이 제한된다. 마스크는 필수이며, 식당이며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 침 튀기며 근황을 묻는 것이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고, 몇 년 전까지만해도 무해하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잠재적 감염자'로 변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혹여나 바이러스가 옮을까 매일 불안에 떨며 지하철에 올라탄다. 




지난 연말에는 2020년 한 해를 없는 셈 치자는 인터넷 밈이 유행했다. 코로나와 함께했던 2020년은 사람들에게 지우고 싶은 아픔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와 함께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전염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2020년을 우리네 삶에서 도려낼 수 없다. '코로나가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시기는 적어도 코로나가 없어진 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염의 시대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잊을 수 없다면, 전염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지구상 인간 중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선물인 이 지독한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이다.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 변화는 이제 기후 재난이 되었다. 초대형 태풍과 지진, 산불이 끊임없이 미디어를 타는 탓에 사람들은 그 심각성에 무뎌진 듯하지만, 이상 기후는 해마다 수천만의 피난민을 만든다. 이 피난민은 인간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www.urbanbrush.net)
 "바이러스는 환경 파괴로 생겨난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다. 새로운 미생물들이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쫓아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가 선정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우리는 이 상황에서 절대로 무결하지 않다. 지난 날, 생각 없이 마구 썼던 일회용품이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그러고 싶다'는 이유로 소비했던 많은 것들이 우리 미래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행동할, 또는 행동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새드엔딩으로 끝날지는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에 달려있다. 우리가 만드는 거대한 나비의 날갯짓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다른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단에서 우리 행동이 모여 만들어내는 누적 효과는 행동 하나가 만들어내는 효과의 합과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수이고 우리 각자의 행위는 각각 지각되기 어려우며, 막연한 전체 결과로 이어진다.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 ('영'이 선정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비단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앓고 있는 이 시대에 나 하나쯤이야, 하고 가볍게 행하는 일들은 쌓이고 쌓여 상상치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코로나를 조금 심한 독감 쯤으로 치부하는 오만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병원에 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또한 버려야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퍼뜨린 바이러스는 쉴새 없이 발을 움직여 한 평생 의사를 보기 힘든 사람들의 몸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몇 천원짜리 약을 구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오지에서 맞닥뜨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서울 시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임을, 우리는 발걸음을 떼기 전에 한 번 더 숙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염의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 일단 이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만이 그 후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불안과 걱정을 억누르고 행복을 찾는 여정은 고되다. 

삶 안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언어가 가진 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선후에 있어서 약간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사실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염의 시대에는 보다 신중하게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말은 행동을 규정하고 모호한 말은 그릇된 태도를 이끌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말은 그 자체에 유령이 따라 다닌다. 전쟁이라는 말은 권위주의, 권리 정지, 공격성(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가만히 두는 게 나은 모든 악령)을 불러온다." ('은'이 선정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사람 간의 반목을 조장하는 자극적인 기사는 피로감을 줄 뿐이다. 사회 이슈를 빠르게 캐치업하는 데에는 뉴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몇 천건씩 쏟아져 나오는 부정적인 기사들 속에서 필요한 내용만을 거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 속의 삶을 1년 넘게 견뎌온 당신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또한, 적어도 수 개월 동안은 다시 이런 삶을 살아갈 당신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실어 키보드 자판을 누른다. 다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시간을 통째로 지우지는 말았으면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한 나날들은 고통임과 동시에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사태에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할 수 있다. 정상적인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생각의 시간'으로 이 시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날수를 세면서, 슬기로운 마음을 얻자.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 ('인'이 선정한 가장 인상깊은 부분)


나중에 되짚어 보았을 때, 이 모든 날이 헛되이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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