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험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시험이란 나의 상상과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그럴듯한 증거를 앞세워 만들어내 제출하면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달랐다. 일단 내가 배우는 학문의 성격 자체가 달랐다. 예전에 배웠던 국제관계학은 이론과 철학적 사고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학문이었다면, 지금 배우고 있는 법학은, 특히 내가 재학하고 있는 로스쿨에서는, 정해져 있는 모든 규칙을 습득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켜야 했다. 이는 평소 내 학습 방식, 능력과 전혀 상반된 방식의 시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
내가 다니고 있는 로스쿨에서는 한 학기에 총 4개 과목을 전부 끝마쳐야 한다. 이는 나처럼 학부에서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법학을 공부하기 위한 GDL이라는 코스의 특성이다. 아, 참고로 나는 한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여튼, 그래서 나는 총 10주로 이루어진 1학기 동안 계약법, 회사법, 불법행위법, 그리고 공법1을 전부 공부했다. 그리고 저번주에 시험까지 끝냈다!
시험 결과가 나와봐야 내가 쏟아부은 노력의 쓸모를 비로소 알 수 있겠지만, 시험을 마쳤을 때의 기분으로 짐작하건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첫 시험인 불법행위법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일 자신 있었던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망친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자신 없었던 회사법 시험은 정말 잘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험을 보고 있는 중간에 말이다. 어떻게든 의미와 배움을 찾아보자면, 만만히 보면 다치고, 긴장하고 준비하면 다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에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지만, 이번 시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시험 기간을 통틀어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점수는 상관없으니, 아니 변호사가 되든 말든 상관없으니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였다. 막상 실제로 시험이 끝나고 나니, 하루종일 공부에 쏟았던 생활 방식이 몸에 익숙해져 갑자기 할게 없어지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왕 보는 거 그래도 최대한 준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준비해 시험을 봐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아 조금의 성취감도 느꼈다.
당장 다음 주에 시작하는 학기를 준비하면서 시험 기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이제 다가오는 새로운 10주를 성실하게, 꾸준하게 버티고 준비하면, 그 후에 있을 시험이 끝났을 때 지금보다 더 달달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새 변호사가 돼 있으려나? 미래는 정말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생길 변화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 달리기도 '한 발자국만 더 뛰자'라고 마음먹고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 조금씩 체력이 늘지 않는가?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자 목표다. 조금만 더 하자. 하나만 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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