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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Sep 21. 2023

두려움에 맞서기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7)     



소설 데미안을 여는 첫 문장이다헤르만 헤세는 1919본명이 아닌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출간했다헤세가 가명으로 출간한 이유는 비밀로 남아있지만어쩌면 그러한 결정이 헤세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었을까작가의 명성에 기댄 출간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작가의 에밀 싱클레어의 청춘 이야기가 더욱 실감 날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에밀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고 데미안의 매혹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사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울까만약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금기시된 것이라면그것에 따라 살 수 있을까헤세는 소년 에밀 싱클레어를 통해 보여준다내 안에 저절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한쪽에는 선량하고 허용된 세계가 있다면 다른 쪽에는 어둡고 금지된 세계가 있다. ‘밝은 세계에 속하는 싱클레어는 금지된 세계에 대한 은밀한 동경이 있다. ‘심지어 이따금은 금지된 세계에 사는 것이 가장 좋기도 했다’(12싱클레어는 돈을 요구하는 프란츠 크로머를 두려워하면서도 거짓 이야기를 꾸며낼 만큼 프란츠로 대변되는 어두운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그러나 프란츠의 요구가 커질수록싱클레어는 두려움은 커지고 나약해질 뿐이다     


그 무렵 학교에 데미안이 나타난다데미안은 이미 그만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였다. ‘그는 모든 점에서 다른 애들과는 달랐다철저히 독특한 그만의 개성이 드러났고그 때문에 눈에 띄었다.’(35데미안은 동생 아벨을 죽인 형 카인에 대한 해석을 전복시킨다카인을 하나님에게 받은 로 인해 보통사람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죽임을 당한 아벨은 겁쟁이라고 '해석'한다데미안의 해석은 아벨의 세계밝고 깨끗한 세계에 속해 있던 온실 속의 화초 싱클레어를 뒤흔든다카인을 두둔하다니데미안은 카인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일까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놀라우면서도 두려운 존재다     


무엇보다 데미안에게는 생각 읽기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직관적인 눈이 있다누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면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지닌 두려움을 간파한다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지닌 비밀크로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싱클레어를 두려움으로부터 구해준다싱클레어는 알게 된다두려움을 공유할 때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을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두려움을 쫓아준 구원자였다     


내가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존재그 세계는 낯설고 두렵지만 나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그곳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싱클레어는 데미안에 이끌리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존재가 부담스럽다싱클레어의 방황이 말해주듯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힘겨우니까그러므로 쉽게 해결하고자 한다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무시하면 된다마치 그곳에 없는 양 우러나오는 것을 회피하면 된다그렇다면 애써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힘겨우므로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익숙한 세계에 머무르면 그만이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알게 된다자신의 무의식이 데미안에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신의 모습 또는 거룩한 가면처럼 보였다절반은 남자절반은 여자나이를 넘어선의지력이 강하면서도 꿈결 같고뻣뻣하면서도 은밀히 생동하는 모습이었다.’ (99싱클레어가 그린 그림은 데미안의 형상이었다극과 극이 공존하는 이미지는 반복된다선과 악의 통합신인 동시에 악마밝고 어두운 세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이 있다는 자각한 존재는 선한 동시에 악하다는 이중성데미안의 주문 네 안의 두려움을 없애라는 그러한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두려움은 크로머의 얼굴로때로는 다른 얼굴로 찾아올 것이다그것은 종말의 시작에서 전쟁이라는 얼굴로 온다데미안은 전쟁을 회피하지 않는다이제 싱클레어는 데미안 없이도 스스로 맞서는 존재가 된다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고 두려움을 지배하는 자로.     


싱클레어는 자신 안에서 데미안을 발견한다그것은 싱클레어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피하지 않고 계속 따라 간 결과 였다그가 스스로 발휘한 용기로. ‘자기 자신이 되어라는 말은 싱클레어의 나이 청년기를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설령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길을 계속 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내가 속한 익숙한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맞닥뜨릴 때 그것이 지닌 근본적 두려움은 여러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낯선 세계에 용기 있게 발을 딛고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을 때성장의 가능성이 열린다     


방황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정해 놓은 길다수의 길에 속하려고 고군분투한다마음 속에서 꿈틀대는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어쩌면 그것을 대면하기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한 길이니까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어떤 이유로 금지되었든부끄러운 것이든차마 말할 수 없이 두려운 것이든 그것에 귀 기울이며 피하지 말고 직면한다면치열하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고민한다면 삶의 두께가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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