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13번지 2화.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들
원고지 좀 사다 줄래?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요청에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꽤 많이 보았다. <삼국지>가 책장에 꽂혀 있었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의미도 모른 채 읽었던 <김약국의 딸들>도 아버지가 보던 소설이었다. 모든 것에 인색한 자린 고비 아버지가 오빠와 나에게 유일하게 아끼지 않는 것이 책이었다. 내가 겉넘을 지도 모른다고, 학교 공부에 소홀할지도 모른다며 학원조차 보내주지 않던 아버지가, 사교육에 ‘사’자도 모르던 아버지가 책만큼은 인심이 후했다. 세계 명작 동화, 위인전 전집, 백과사전 등 어렸을 때부터 집에는 책이 있었고, 내 생일이면 인형이 아닌 동시집을 선물로 주곤 하셨다. 그 영향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나 역시 꽤 다독가였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자식들이 가난을 느끼지 못하게끔 ‘살아내야’하는 아버지께 본인이 읽어야 하는 책은 언제부터인가 사치품이 되었다.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는 책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였다. 시골집에는 다락방이 있는데, 그곳에는 내가 원룸에서 원룸으로 이사를 하며 가져다 놓은 책들이 꽤 되었다.
나 역시 수능의 압박을 느낀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잘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읽지 않는다고 해서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서점에 가는 일은 여전히 최고의 힐링 포인트다. 읽지도 못할 책을 매달 사면서 자책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언젠가는’이라는 네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 네 글자가 아버지에게도 와 닿은 것이다.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나의 소소한 일상>이 아버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걸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아버지는 얼마 후 머리 맡에 놓을 스탠드를 사셨다.
그런 아버지가 내게 원고지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자서전을 써보려고.”
예순 여덟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2년 후 아버지가 칠순이 되었을 때, 그 자서전을 완성해 친척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우선 아버지가 글을 쓰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걸 생각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시작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사실 나는 아버지께 그리 다정다감한 딸이 아니다. 아버지 역시 나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아니다. 딸들은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던데,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같은 사람이 싫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마음 깊이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과 별개로, 아버지와 나는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이다. 맞지 않는 사람.
엄마와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스물한 살, 서울로 독립하지 않았더라면,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더라면 아버지와 정말 피 터지고 박 터지게 싸웠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 우리 가족의 화목은 나의 독립 때문이다. 뭐, 이건 크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이렇게 다르다고 생각한 아버지와 나 사이의 접점이 생긴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엄마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책을 엄청 좋아하는 작은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서전을 쓰겠다는 아버지의 선언과 함께 내 성향의 근원지가 의심 받기 시작했다.
“난 네가 작은 아빠를 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무슨 바람이 불어 자서전이래. 엉뚱하고 뜬금없는 게 어째 딸이나 아빠나 똑같아.”
나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게. 나는 바로 아버지께 원고지를 주문해 보내드렸다. 아버지가 자서전을 완성한다면, 내가 편집 디자인도 직접 배워서 아버지의 칠순에 정말 멋진 책을 선물해드려야지. 꼭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