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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Oct 30. 2020

네 멋대로 해라

목요일 아침마다 매일 싸운다. 싸우는 이유는 매번 같다. 단 하루뿐인 자유복 등원 날 아이는 집에서 제일 후줄근한 옷을 골라 입고 가겠다고 하고 나는 그것만은 안 된다고 하니 싸움이 난다. 갑자기 복장을 가리기 시작한 건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다. 작년까지만 해도 옷은 꺼내주는 대로 입고 귀여운 모자도 잘 쓰고 다녔는데. 이제 악세사리는 답답하다며 벗어던진 지 오래고 무엇이든 조금만 여성스럽다는 판단이 서면 입고 걸치기를 거부한다. 자식이라고 하나, 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랑 아들 하나인데. 요렇게 조렇게 예쁘게 입혀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못내 서운하다.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겠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인 날이다. 지난 여름 무렵부터 아이는 '편안함'을 넘어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패션피플은 못 되지만 이것 하나는 안다. 투 머치한 착장이 될 바에야 단정하고 심플한 편이 낫고, 제대로 살리지 못할 바에야 멋은 과하게 내지 않는 게 낫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엄마, 아빠 중 누구에게도 미적 감각을 물려받지 못한 아이는 원색과 형광색으로 온 몸을 두른 패션이라든지, 계절에 전혀 맞지 않는 재질이나 색감을 고집함으로써 패션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려 한다.


오늘도 나는 녀석의 똥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몰라! 네 멋대로 해!" 외마디 항복을 외치고 말았다. 결국 아이가 고심 끝에 고른 착장은 진한 초록색 상의에 형광 연두색 바지.. 여기에 에메랄드색 양말. 밀리터리 풍의 선글라스는 찾지 않았으니 감사해야 할까.

최대한의 센스를 발휘하여 이토록 과한 조합의 옷을 입혀 보낸 코디네이터라는 오명을 쓰게 될, 나 자신이 가엾게 느껴진다.




아이가 네 살이었을 때다. 가까운 곳의 어린이집은 자리가 차서 들어가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동네에 새로 개원하는 어린이집을 힘들게 수소문해 다니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이전까지 어린이집은 걸어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는 유난히 자동차 등원을 힘들어했다. 아침마다 걸어서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또는 느려 터진 세발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이는 집을 나서자마자 문 앞에 세워 둔 세발 자전거에 덥석 올라탔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는 거였다. 물론 출발하면 도착이야 할 수 있을 터였다. 차로는 십 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우리 동네와 어린이집이 있는 동네 사이에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가로막고 있었다. 천변을 따라 그 길을 돌아 가려면 삼 사십 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밖은 온통 뿌얬다. 인터넷을 확인해 보니 그 날 서울의 공기는 뉴델리의 도심보다도 공해가 심각했다. 미세먼지가 무려 200에 가까운 수치를 밑돌았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한 다음, 결단을 내렸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우리는 천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세발자전거의 바퀴 세 개를 경쾌하게 돌렸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지나자 끝 모를 오르막길이 나왔다. 나는 세발자전거에 달린 보호자용 핸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아이의 자전거보다 오히려 앞서 걸었다. 자전거를 타겠다고 한 것은 네 선택. 도와줄 마음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십여 분 달리고 나자 아이의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빨리 가자며 걸음을 재촉할 뿐 여전히 도움을 주지 않았다. 또 십여 분이 지나자 평지에서도 아이는 힘들어했다. 더 이상 못 가겠노라는 아우성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간절한 호소를 힘겹게 외면한 채 앞만 보고 걸었다. 이제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면서 페달을 돌렸다.


집을 떠난 지 오십 분 만에 우리는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는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교실에 들어갔다. 그 날 이후,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날까지 아이는 단 하루도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때 고작 네 살이었는데.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한 엄마였던 것 같아 이제와 짠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 날은 나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고집이 꺾이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너 하고 싶은 대로'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만지면 뜨겁다고, 거기서 뛰다간 넘어진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쉽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던 때였다. 앞으로가 문제다.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책임지기에는 그 댓가가 너무 크고 뼈아프다는 걸 아니까. 어르고 달래고 협박을 해서라도 안전한 차 안에 태워야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좋은 엄마 되기가 더 어렵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학위나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지만, 어쩌면 온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간절히 갈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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