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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30. 2023

외국어를 잘하는 방법

나 홀로 일본 여행_prologue3

외국어의 야마 (山) 


    어렸을 때부터는 영어를, 고등학교 때는 프랑스어를,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중국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지금은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물론 라틴어는 실제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사어(死語)이지만 어쨌든.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취미이다 보니 외국어 공부에 대한 나름의 철학 비슷한 게 생겼는데, 언어마다 야마(山)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각각의 언어를 배울 때마다 그 언어를 정복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산이 존재한다는 거다. (우리나라 기자들 사이에서 은어로 쓰이는 야마는 일본어에서 온 말로 '기사의 핵심주제'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일본어로 '야마'가 '산'이니까 그렇게 쓰이는 듯하다.)


    비록 모든 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나, 각 외국어를 배우며 내가 꼽은 언어 별 야마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지금 이 타이밍에서 이걸 왜 하냐. ㅎ 일본어 공부하기 싫고 프랑스어 숙제하기 싫어서..... ㅎㅎㅎㅎㅎㅎ 




중국어로는 노래를 대체 어떻게 부르는 걸까: 성조 그리고 권설음


    중국어의 경우에는 권설음성조가 중요하다. 성조는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뭔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중국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다른 언어랑은 달리 유달리 시끄럽게 들린다고 느끼곤 하는데, 그게 바로 '성조' 때문이다. 단어마다 음의 높낮이가 다르고, 종종 그에 따라 뜻도 달라지기도 하니 성조 없이는 중국어를 논할 수가 없다. 

    

    문제는 각 단어마다 이걸 익혀야 한다는 것이고, 이게 또 성조끼리 만나면 가끔 다른 소리가 나기도 하는 규칙이 존재하기도 한다. 모국어라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외국어로서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 규칙들을 모두 암기하고 의식하여 말을 해야 하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한국어는 물론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영어에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므로 단어에 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매우 어색하다.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 진짜 애를 먹었다. 사실 중국어는 실력 순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마지막일 정도로 잘하지도 못하고 한지 너무 오래되어 뇌가 창고라면 저 깊이 먼지가 가득 쌓인 지하창고에 처박혀 있을 법한 그런 존재이지만... ㅎㅎ 한창 열심히 공부하던 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노래처럼도 외워보고 리듬도 타보고.... 



    중국어를 한창 공부하던 때 '대체 중국인들은 노래는 어떻게 부르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노래에는 정해진 멜로디가 있을 텐데 단어 고유의 성조를 살리면서 멜로디대로 부르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노래를 부를 때는 멜로디에 따라 부르고 성조는 무시한다고 했다. 그럼 발음은 같은데 성조가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고 여쭤봤더니 맥락에 따라 파악한다고 하셨다. 맥락을 고려해도 모르겠는 경우에는 결국한자를 보면 되는거라고 했다.

    사실 답변을 듣고 나서 되게 허무했다. 뭔가 나는 모르는 중국인들만의 비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가령 목소리를 두 개로 쪼갠다거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신박한 답변을 기대했던 것 같다 ㅎㅎ)


    어쨌든, 중국어는 이 독특한 '성조' 때문에 말장난 같은 것들이 많은데,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성조를 가진 단어들을 나열해 일종의 'tounge twister'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이나 영어의 'Peter Piper picked a pack of pickle pepper' 정도. 근데 중국어는 난이도가 다르다. 오로지 성조만으로 단어들을 구별해야 하니 진짜 머리 아프다. 사이트를 첨부하니 집에서 심심한 분들은 따라해보시길. 중국어의 매력...? 을 느낄 수 있다. 

sì shì sì, shí shì shí, shísì shì shísì, sìshí shì sìshí;shéi bǎ shísì shuō “shíshì”, jiù dǎ tā shís


    중국어의 또 다른 야마가 있다면 '권설음'이라고 생각한다. 권설음은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으로, 영어의 [r] 발음과 매우 비슷한데, 이 권설음 때문에 중국인이 한국어의 'ㄹ'을 발음할 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혀를 잔뜩 뒤로 동그랗게 말아서 소리를 내는데, 일단 영어의 'is'에 해당하는 단어인 'shi'이 권설음이니 중국어를 할 때 권설음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감이 올 거다. 다행히 우리는 모두 감사하게도 조기영어교육 덕분에 [r] 발음의 존재를 알고 있어 엄청 생소하지는 않겠지만, 이게 또 미묘하게 영어의 'r'과도 달라서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언어마다 존재하는 독특한 발음이 외국어를 배우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안 쓰는 혀, 입의 근육을 사용하고 조성기관들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 내 몸을 탐구하는 느낌도 든다고 해야 할까. 




라틴어, 언어퍼즐 맞추기 


     영어를 처음 배울 때 한국인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아마 '관사'와 '주술일치'가 아닐까 싶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사실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일단 관사.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단복수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화자와 청자가 공통적으로 존재를 인지하고 발화의 대상이 된다고 합의가 된 명사에 대해서는 'the'를 사용한다던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the'를 쓴다든가 등 여러 규칙이 존재한다. 


    한국어에서 명사 뒤에 '들'을 붙임으로써 복수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단복수를 크게 구별하지 않으므로 단복수가 중요한 영어가 낯선데 거기다가 관사까지 구별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a'와 'the'는 단순히 명사의 단복수에 따라 구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 규칙에 따라 'the'만 쓰기도, 아예 관사를 안 쓰기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게 모국어가 아닌 이상 능숙해지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대체 여기서는 왜 a가 아니라 the를 써야 하는거냐'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데, 애써 문법책에 나온 규칙과 이론으로 설명을 해주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거다. 그냥 느낌상 'the'가 맞으니까.....  이게 참 언어라는게 수학처럼 공식대로 딱 맞아떨어질 수가 없으므로 (결국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the'가 들어가는 게 맞아서 'the'라 한 것이 온데... 


    관사만큼이나 어려운 게 주술일치이다. 주어의 인칭, 그리고 영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어의 성(性)까지 고려하여 동사와 형용사를 적절한 형태로 변형해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다행히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는 영어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형용사는 주어에 구애받지 않고 늘 같은 모습이고, 동사의 경우도 사실상 불규칙을 제외하고는 '(e) s'를 붙이냐 안 붙이냐로 나뉘니까. 


    그런데 프랑스어만 해도 과거 라틴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바람에 대명사를 제외한 일반명사에도 성이 존재하고, 형용사와 동사가 모두 주어에 따라 변화하는데다가 시제에 따라 어간이 일정한 것도 아니라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면 프랑스어는 아직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푸념에 불과하겠지만, 정말 진짜 가끔 토가 나온다..ㅎㅎ 


    그런데 또 가끔은 이 부분이 아마 라틴어 계열 언어를 공부하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치 하나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주어에 맞게 모든 서술어를 조립한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큐브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주 빠르게 머릿속의 큐브가 휙휙 돌아가다 마침내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졌을 때의 쾌감이란!



    아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대학생이 있다면, 그리고 학교 교양수업으로 라틴어가 있다면 제발제발꼭 라틴어 들어보길 너무너무 권한다. 일단, 앞으로 배울 일이 없다. 앞서 말했듯 사어이므로 실용성이 0이라서 '성스러운 학문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가르치는 곳도 없고 앞으로 접할일도 전혀 없을 거다. 이걸 바꿔 말하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거. 원래 대학은 가장 쓰잘데기 없는 학문을 '대학생'이라는 신분 하나만으로 탐구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는 곳이다. 


    그리고 라틴어를 배우고 나면 그로부터 파생된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을 공부하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일단 단어 생김새가 비슷해서 대충 뜻을 유추할 수 있고, 어간과 어미도 매우 유사하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문장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니 새로운 언어의 문턱이 낮아진다. 영어의 경우, 그동안 무작정 암기했던 것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아하' 모먼트가 온다. 


    마지막으로 있어 보인다. 간지 나니까.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간지나게 폼나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도 배우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학문을 탐구하는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는 사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다


    자 이제 드디어 일본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텐데. 아직 배운지 얼마 안 되었지만, 본능적으로 일본어를 진짜 원어민처럼 하려면 '장음'을 정복해야겠다고 느꼈다. 


    장음은 말 그대로 긴 발음인데 한국어에도 있다. 가령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신체부위의 '눈'은 각각 [눈:]과 [눈]으로 전자는 길게 발음하고 후자는 짧게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장음은 한국어에 존재하는 동음이의어를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이기도 해서 아나운서 등은 이를 구별하여 발음하지만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이를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 일본어의 경우에는 장음이 일상 언어에서도 명확하게 존재한다.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도 아는 '귀엽다'는 뜻의 '카와이 かわいい(可愛い) '도 엄밀히 말하자면 '카와이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도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가 아니라 [아리가토오 고자이마스]라고 해줘야 한다. 일본어를 흉내 내는 개그맨들이나 개그우먼들이 종종 말끝을 늘이는걸 볼 수 있는데 아마 이 '장음'의 특징을 잡아내서 그렇게 하는게 아닐까 싶다. 



    일본인들이 외국인의 일본어를 종 알아들을 수 없는 이유도 이 장음 때문이다. 우연히 카라의 강지영이 일본 드라마에 나온걸 본 적이 있는데, 얼굴이 낯익다 싶기는 했지만 한국인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일본인 그 자체. 그만큼 일본어 말투나 발음 억양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래의 영상에서 물론 강지영이 강조하고자 하는건 억양이지만, 잘 들어보면 이 장음을 매우 자연스럽게 발음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주변에 일본어를 꽤나 한다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일본인들의 일본어랑은 어딘가 다르고 어색하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장음'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YA8tsNCNwL8




내가 야마 (山)에 집착하는 이유 


    이 야마는 외국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유창하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보다는 (모국어를 함에 있어서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앞서 말한 영어 등의 라틴어 계열 언어의 야마는 물론 문법에 좀 더 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관사나 주술일치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기보다는 그에 대한 감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발음이 야마인 중국어, 일본어의 경우에는 더더욱. 


    '발음, 억양 이런게 뭐가 중요하냐, 말만 통하면 됐지'라는 식으로 얘기할 수 있겠으나, 그런 식의 사고는 뭐랄까 다소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그 외국어 본연의 느낌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영어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이 이야기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물론 발화의 내용이 언제나 우선이겠지만 그게 전달되는 형태는 상대에게 주는 인식이나 내용의 전달에 있어서 아주아주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학생 중 정말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있다.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줄 알고, 사용하는 단어의 수준이나 문법도 꽤나 고급이다. 그런데 관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다가 특유의 한국식 영어 억양과 발음 그리고 잘못된 끊어읽기가 내용을 다 가려버는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귀에 거슬릴 정도의 억양은 (이러면 안 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정말 듣기가 싫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가령 '티쳐-어-아이 스터디이드-쏘우' 랄까…. 나야 가르치는 입장이니 어쨌든 끝까지 그 학생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이런 자비를 바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각 언어마다 존재하는 그 언어만의 '맛', 그 '야마'를 잘 파악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외국어를 온전히 자기의 언어로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뭐 내가 척척박사도 아니고, 언어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일본어 학원을 한 달 다니고 나 홀로 일본 여행을 이미 다녀온 상태인데, 여행 3일 차부터는 이자카야나 음식점에서 옆에 앉은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자주 지나치게 유창해 보이는 발음과 말투 탓에 내가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알고 엄청난 일본어를 쏟아내는 상대로 인해 당황한 적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이니 뿌듯하기도 하다. 내 자랑 같아 보이는데 맞다. ㅋㅋㅋ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외국어 공부에 있어 이 '야마'를 각자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는 거. 

    한 번 믿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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