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내현적 나르시시즘과 착한 아들의 비극

왜 착한 아들이 비극이 되었을까

by 황규진

Part 1에서 당신은 많은 것들을 확인했을 것이다.


나만 애쓰는 듯한 그 피로감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 투명한 벽처럼 느껴지던 그 거리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의 세상에서 당신이 언제나 2순위로 밀려나는 것도, '효자'라는 방패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는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


하지만 이 모든 걸 알고 나서도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대체 왜?'


왜 그는 관계를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친절하면서 왜 당신에게만 차가운 걸까? 왜 그토록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그의 세상은 어머니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걸까?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해봐도 속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렵다.


"그냥 미성숙한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남자들 원래 그래."


하지만 당신은 안다. 이것이 단순한 미성숙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뭔가 더 깊고 복잡한 것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 그 '뭔가'에 이름을 붙여줄 시간이다.


당신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든 그의 모든 행동들,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정체를 찾아보자. 이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과 마주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병의 이름을 알아야 치료법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찾은 그 이름은 '내현적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든 대화에서 주목받으려 하는 사람들. SNS에 자기 사진만 올리고, "나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 이전에 집필했던 책 [운명이라는 착각]에서 말했던 나르시시즘의 유형이 외현성 나르시시즘이다. 심리적인 동기는 동일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정반대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겸손해 보인다.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오히려 수줍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남다른 특별함에 대한 은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구가 숨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착한 아들'이라는 역할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머니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착한 아들'이라는 이미지. 이것만큼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게 완벽한 가면은 없다.


효도라는 숭고한 가치 뒤에 숨어서, 자신의 문제적 행동들을 모두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누가 감히 효자를 비난하겠나?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착한 아들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고,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이해다.


당신이 겪어온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설명할 수 없었던 답답함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을 탓하는 것을 멈추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볼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착한 아들'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심리에서 나오는 건지, 왜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하게 되었는지 그 구조를 파헤쳐보자.


진실을 아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자유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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