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엄마의 아들로 살아남기

끝나지 않은 탯줄

by 황규진

Part 1에서 확인한 관계의 문제들 - 일방적인 노력, 투명한 벽, 2순위로 밀려나는 자리, 효자라는 방패 -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성격 문제는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된 걸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그의 마음이 처음 만들어지던 그 시절로.


끝나지 않은 탯줄


모든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엄마 품에서 벗어나 혼자 걷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잔다.


그 다음에는 정서적으로. 엄마와 다른 생각을 가져도 되고, 엄마를 실망시켜도 괜찮다는 걸 배운다.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이야'라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과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그의 어머니는 혼자 있기가 힘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자신만의 삶이 없어서 공허했거나, 아니면 원래 혼자 있는 걸 견디기 어려운 성격이었거나.


그래서 아들을 곁에 두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 그가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려 할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리 아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엄마가 속상하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만은 엄마 편이어야지."


이런 말들로 아들의 독립적인 생각을 차단했을 것이다.

어린 그가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할 때마다.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친구들보다 가족이 더 소중한 거 아니야?"

"엄마가 외로운데 아들이 나가면 어떡해?"


이런 식으로 아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걸 막았을 것이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 엄마의 요구에 맞췄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게 사랑받는 길이고, 사랑받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접었다.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춰갔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이제 그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보이지 않는 탯줄에 연결되어 있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아들


그의 어머니에게는 늘 털어놓을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불만, 시댁에 대한 스트레스, 이웃과의 갈등, 건강에 대한 걱정.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면 "또 시작이야" 하며 피해버리고, 친구들에게 하면 "너만 힘든 게 아니야" 하며 위로는커녕 비교만 당한다.


그런데 아들은 다르다.


아들은 절대 엄마를 떠나지 않는다. 아들은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아들은 항상 엄마 편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아들에게 쏟아냈다.


"아들아, 엄마 하루 종일 속상했어."

"네 아빠는 왜 저럴까? 나만 힘든 것 같아."

"외할머니가 또 그런 말씀을 하시네. 정말 스트레스받아."


어린 그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배웠다.


엄마가 슬퍼하면 자신도 슬퍼야 하고, 엄마가 화나면 같이 화내야 하고, 엄마가 기뻐하면 더 기뻐해야 한다.

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을 처리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패턴이 20년 넘게 계속되었다.


지금도 그는 매일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를 듣고, 어머니의 기분을 파악하고, 어머니가 기뻐할 만한 말들을 준비해서 한다.


당신과 데이트 중에도 어머니의 전화가 오면 받는다. 어머니의 사소한 고민이라도 당신과의 중요한 대화보다 우선한다.


왜? 그게 그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감정을 돌보는 것. 그것이 그가 평생 해온 일이고, 그것만이 그가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우고 '역할'만 남은 사람


그렇다면 진짜 그는 누구일까?


슬픈 이야기지만,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진짜 감정과 생각을 억눌러왔기 때문이다.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다.


'착한 아들'이라는 역할을 어떻게 연기하는지만 안다.


착한 아들이라면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 각본만 완벽하게 외우고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그 각본대로만 반응한다.


진짜 감정이 아니라 '착한 남자친구라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각본에 따라서.


당신이 그에게서 느꼈던 그 어색함, 그 인위적인 느낌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진짜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가장 슬픈 건 이것이다.


그는 당신을 진짜로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건 오직 '사랑받는 법'뿐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지.


진짜 사랑은 자기 자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을 상대방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눌 '자기 자신'이 없다. 오직 '착한 아들'이라는 가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계속 목말랐던 것이다.


가면을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 진짜 사람을 만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공간만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엄마의 아들로 살아남은' 한 남자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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