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있었지만 없었던 아버지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어머니에 대해서만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다.
어머니와 아들이 왜 그토록 비정상적으로 가까워졌는지를 알려면, 그 삼각형에서 빠진 나머지 한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부재하는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집을 떠나거나 이혼한 아버지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들이 더 많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 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온다. 주말에도 골프나 회식으로 집에 없다. 집에 있을 때도 TV 보거나 신문 읽느라 가족과 대화하지 않는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는게 가족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하지만 정작 가족의 속마음이나 고민에는 관심이 없다.
어머니가 육아나 가사에 지쳐서 푸념해도 "나도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라며 자신의 고생만 내세운다.
"아버지 말씀이 곧 법"이라는 식으로 가정을 통치한다. 아내나 자녀의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감정 표현은 약한 것이고,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자녀가 힘들어해도 "그런 걸로 힘들어하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냐"며 다그친다.
가족들은 아버지 앞에서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렵다. 비판이나 훈계만 돌아올 게 뻔하니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주도성이 없다. 중요한 결정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가족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아내가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출하면 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모른 체하고 넘어가려 한다.
아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이나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마치 어머니의 또 다른 아들 같은 존재다.
가정에서 '진짜 남편', '진짜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심리적 남편'이 된 아들
남편에게서 정서적 만족을 얻지 못한 어머니는 무의식적으로 그 빈자리를 아들로 채우려 했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말이 없다. TV만 보거나 스마트폰만 본다. 대화가 필요하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을 건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엄마한테 이야기해봐."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아들에게 털어놓는다.
"네 아빠는 왜 맨날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가족한테는 관심도 없으면서."
아들은 어머니의 편이 되어준다.
"엄마가 힘드시겠어요. 아빠가 너무 하신다."
아들은 점점 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 어머니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어머니 편에 서서 함께 아버지를 비판하는 동료.
이 과정에서 아들은 '우리 집의 진짜 남자는 너야', '나이에 비해 참 성숙하다' 같은 말을 듣는다.
아이는 이런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부모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위태로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대신 아이로서 응석부리고 보호받을 권리는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 어머니로부터 건강하게 분리되는 법을 배운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야.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에게 의존하지는 않아"라는 걸 깨닫는다.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 남성적인 역할을 학습한다. 책임감, 리더십, 경쟁과 협력, 감정 조절 등을 배운다.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 건강한 부부 관계가 뭔지 본다.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배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아버지가 없었다.
그의 유일한 역할 모델은 어머니에게 의존하며 사는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첫째, '분리'를 배우지 못했다.
그의 세상에서 여성은 극복하고 독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영원히 돌봐야 할 대상이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당신도 그가 보살펴야 할 '약한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약한 존재'가 자신보다 더 강하고 독립적일 때는 당황한다. 자신의 역할이 애매해지니까.
둘째, '동등한 파트너십'을 배우지 못했다.
그가 아는 유일한 관계 모델은 '돌보는 자'와 '돌봄 받는 자'의 수직적 관계뿐이다.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수평적 관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당신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돌보는 자' 역할을 하려 하거나, 아니면 당신에게 '돌봄 받고 싶어' 한다. 동등한 파트너로는 만날 수 없다.
셋째, '자기 감정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평생 다른 사람(어머니)의 감정을 관리하는 데만 급급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화나거나 슬플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냥 참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당신)이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
결국 그가 당신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건강한 남성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로만 존재한다.
당신을 만나도 그는 또 다른 어머니를 찾거나, 당신 앞에서 어머니에게 했던 '착한 아들' 역할을 반복한다.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가 채워줬어야 할 빈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30년이 넘도록 아물지 않은 채로.
그 빈자리 때문에 그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고, 당신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