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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빌리 Jun 23. 2023

떠돌이 아빠

뿌리내리지 못하고 또는 않고 부유하는 삶

 노동과 삶의 조건에서 물리적 장소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트북 한 대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점점 늘어난다. 이런 시대에 고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전히 고향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여섯시 내고향'이라는 프로가 지상파 tv에서 방영 중인걸 보면 특정 시청자층에는 유효한가 보다.

하지만 나에겐 아주 처음부터 고향이란 단어가 친밀하지 않았다. 


  혈연, 지연, 학연 이라는 세 개의 대표적인 연결고리 중에 내게 여전히 유효한 것은 혈연 뿐이다. 지연과 학연은 왠지 농경사회 내지 초기 산업사회의 구시대의 유물 같아서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혈연은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떠나온 곳,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내겐 비슷한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은 언제나 어머니였다. 신산스러운 삶을 견뎌낸 한 여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고마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어머니. 고향이라는 단어보다는 뿌리라는 어감이 어울리는 감정의 대상


  어머니를 뿌리라고 한다면, 결혼은 내가 만들 새로운 가정으로 뿌리를 옮겨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옮겨심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스스로 정한 곳에 뿌리내리려 했지만,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혼했다. 

옮겨심는 과정에서 이미 뿌리는 한 번 뽑았다. 지금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상태다. 

부유하는 이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부유하더라고 가지 말아야할 곳이 있기 때문에 삶의 두가지 지침을 정하고 부유할 뿐이다.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사는 것

둘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그 두가지 지침만을 정해둔 채 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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