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예배에서 교회에 관한 설교를 들으며,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교회를 동사 세 개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저의 생각을 학생들과 나눴습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아픔을 달래주고 위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눈물 닦아주는 교회'라고 명명했습니다. 힘든 이들에게 교회는 휴식처와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는거룩함을 추구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보며 ,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눈을 마주쳤습니다. 우수에 찬 눈빛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제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주변 관계 개선도 우선 순위가 높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손길을 내주면 좋겠습니다.
직업이 좋고, 거룩하고, 품격 있고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품어주는 교회가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는 교회입니다. 누추한 사람을 만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누구나 좋은 곳에서 식사하며 품격 있는 만남을 갖고 싶어 합니다. 바울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바울의 행동을 본받고 싶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임재하시는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성막처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우리 자신이 밟는 땅이 곧 교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듬어 주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제 마음도 동일하게 아프기 때문입니다.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이름을 '눈물 닦아주는 교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눈물 닦아 주는 교회입니다. 다락방 식구들도 직업이 좋고, 자녀들도 다 훌륭하고 그런 분이 오신다면 좋지만, 바닥을 치고 있는 분들을 다락방 식구들로 만났을 때 과연 위로할지는 용기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소망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동하는 성전으로서, 우리가 밟는 땅이 곧 교회가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아픈 이들을 보듬고 싶습니다. 저는 고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학생들과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며, 각자가 생각하는 교회의 의미를 독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학생은 '반석 같은 교회'로,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세워주는 교회'로,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교회를 물감에 비유했으며, 세상에 아름다운 색을 칠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믿음의 증표'가 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믿음을 증거 하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교회는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 모든 이를 포용하는 아름다운 색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교회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진정으로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교회는 세상을 아름답게 칠하는 물감입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 곧 교회는 세상을 아름다운 색깔로 칠해봅니다. 오늘은 무슨 색으로 세상에 색칠할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노란색, 비 온 뒤 무지개색이던지 아름다운 예수님의 색상으로 색칠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