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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19. 2019

유자녀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내 딸 내 아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대들과 함께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이른 아침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모든 일은 끝이 나야 완성이 된다는 강론을 들으며 다른 것들이 떠오를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의 삶은 완성이 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이별이지만 그의 삶만으로 보면 그는 완성의 길을 걸어간 셈이라 생각하니 왠지 깊은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J대병원 호스피스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J대 병원은 계속 다니던 병원은 아니었다.  국립암센터에서 통원형 호스피스를 하다가 언젠가 입원해야 할 때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아빠를 보러 올 수 있도록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J대 병원 호스피스에 진료 예약을 해두었었다. 진료 예약일을 한참 앞두고 너무 아파 구급차를 불러 타고 우리는 J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J대병원 호스피스 생활은 끝없는 위안이기도 했고 이별이 온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호스피스 생활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와 사별을 준비하는 아동, 청소년 자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의 사별 프로그램은 대부분 어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어린 유자녀들은 사별 후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한 번은 호스피스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미술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나도 내 아이들이 아빠와 이별한 뒤 어떻게 아플지 어떤 상처를 받게 될지 모른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미술심리치료를 받아서 좋았던 것처릠 누군가들의 힘이 모아져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면 그것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에 아빠가 하늘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병원으로 온 아이들, 막내가 아빠를 보고 처음 한 말은

"이런 날이 정말 올 줄 몰랐어"였다.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 생각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 하고 허전해하고 누군가가 아빠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그런 마음을 느끼며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어떤 날 혼자서 펑펑 우는 날도 있으리라.


남편의 투병기간 동안 우리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그 힘으로 버텨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보내고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받아온 분에 넘치는 사랑을 되새기며 이제 세상에 우리가 받아온 사랑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늘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바랐었기에  내가 사는 장수에서 세월호 영화 공동체 상영을 할 때 남편 이름으로 지역분들이 세월호 영화를 보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그리고 J대 병원 호스피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의논하며 사별 유자녀 프로그램을 제안드렸고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에 내가 사는 장수에서 진행하게 된다.


나는 가난하다. 이 일은 내가 여유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분에 넘치게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할 수 있는 일이고, J대 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 해주셔서 가능해진 일이다. 함께 프로그램 자원활동을 하겠노라고 나서 준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나는 그저 누군가들의 힘을 모아 이렇게 작은 한걸음, 유자녀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하면 그만큼 유자녀들을 향한 누군가들의 선한 힘이 생겨날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해볼 뿐이다. 해마다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두근두근 토요일이 다가온다. 이날 하루만큼만이라도 아이들이, 그리고 사별 엄마, 아빠들이 다 잊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내 아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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