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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03. 2020

내일도 딱 오늘만큼이었으면

호스피스 이야기1.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언젠가 항암 부작용으로 벽을 잡고 구역을 하다 하다 몸서리를 치며 남편이 말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분 기다려주고 안아주고 자리에 눕히고 스치는 말처럼 "이번 주만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곤 대화의 주제를 바꿔보려고 그의 손을 잡고, TV 채널을 돌리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지쳐서 남편은 이내 잠들고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남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남편에게 늘 자신있는 것처럼, 당신 마누라 씩씩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해줄 수 있는게 참 없구나 번번이 실감이 되곤 해서 서럽고도 미안했다.


처음 남편이 호스피스를 가고 싶다고 말했던 건 임상약에 내성이 오고 표준 항암을 시작하기 전이였다. 아픈 사람이 이럴 수 있나싶게 하루하루 아주 작은 일에도 웃으면서도 아, 이렇게 인생이 행복한데 내가 일찍 죽어야 하나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아프고 앞이 안 보여서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호스피스를 가겠다는 남편을 붙잡아준 건 주치의 선생님과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셨다. 아직,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고 환자를 살리고 싶은 의사의 마음도 있으니 충분히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재촉을 하지도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의료진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을 내보여주셨다. 그때 선생님들이 붙잡아 주신 덕분에 우리는 그래도 2년여를 아프지만 또 행복하게 보냈다.

그때 남편은 이런 말을 했었다.

 "남들이 나에게 호스피스를 가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결정할 거야"


우리가 마지막으로 호스피스를 결정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은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싶어 하셨다. 물론 주치의도 우리에게 사실상 다른 방법이 있지도,  비급여약을 먹어본들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아셨으리라. 호스피스로 전과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선생님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주치의 선생님도 병동 간호사 선생님께도 각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 중에서 우리를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호스피스 진료를 처음 보던 날, 호스피스 선생님은 모니터가 아니라 남편과 내 얼굴을 보며 진료를 했다. 남편의 통증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들어주었고 어떤 상황이 통증을 유발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진료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의아했는데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함께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 진료가 끝나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나를 불러 경제적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를 물었다. 호스피스는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우리 스스로 호스피스 결정을 했어도 첫 진료를 마치면 남편이 한없이  우울해질까 봐 속으로는 겁이 났다.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를 호스피스로 가도록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두렵지도 미안하지도 않은 것처럼

"여보  진료가 세심해"

"응, 그러네 자세히 들어주네"

우리는 담담하게 이야가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

처음에 우리는 외래처럼 다니는 자문형 호스피스를 선택했기에 호스피스 첫 진료를 마치고 나와 남편은 평소처럼 집으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남편이 하늘로 가기 전까지 내 소망은 딱 오늘만큼만 이었다. 더 좋아지는 걸 바라지도 않을 테니 내일도 딱 오늘만큼만 버텨주었으면 하는 이런 마음...


그때 날마다 내가 여보, 내일도 당신이 오늘 같으면 좋겠네 라고 말하면 남편은 그럼 너만 고생이지 했다. 그래도 속으로 바라지 않았을까 딱  오늘만큼만 내일도 이랬으면 하고. 그렇게 날마다...


자문형 호스피스를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오늘같은 내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문형 호스피스 기간은 두달이었다.


남편 기일이 다가온다.  환자에게 좋다고 해서 샀던 무중력 의자에 남편이 앉아있는 것 같다. 거기 앉아서 TV를 보고 웃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내게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런 일상이 내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집안  구석구석에서 남편이 걸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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