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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Q Oct 27. 2020

맛으로 깨달은 여행의 즐거움  

한국,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이야기


생에 첫 혼자 여행의 목적지는 전라북도 전주시였다. 이 여행은 어느 날 홀연히 하루 전날 전주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1박을 예약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큰 배낭과 카메라 가방까지 챙기고서 전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고,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곧장 남부시장으로 향하는 전주 시내버스를 탔다. 타지에서 몇 번 먹어보았던 '전주 콩나물국밥'을 정통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남부시장 내에 있는 어느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드르륵 옆으로 밀어야 열리는 문을 열고서 쭈뼛쭈뼛 서서 물었다. "지금 콩나물 국밥 먹을 수 있어요?"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혹시 쉬는 시간인가 싶어서 물어보았는데, 주인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기다리면서 TV 보고 있으라며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주문받은 후 바로 요리에 들어간 콩나물국밥이 보글보글 끓으며 내 앞에 조심스럽게 놓였다. 콩나물국밥 뚝배기 옆에 날계란이 든 작은 그릇이 있어서 내 눈이 동그래지니 할머니께서 웃으셨다. "전주는 처음이에요? 국밥은 처음 먹어보는 건가?"


그렇다고 하자 내게 콩나물국밥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계란을 푼 작은 그릇에 국밥 몇 숟가락을 덜고 테이블에 있는 김가루를 뿌려서 같이 먹으라고 했다. 그 방법으로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따끈한 국물에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싹싹 긁어서 맛있게 먹었다. 든든하게 먹으니 여행도 씩씩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을 잘 먹었을 때 주인에게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할머니에게 그렇게 말씀드리니 정말 환하게 웃으셨다.  "고마워요. 학생, 여행 잘해~!" 국밥집 할머니의 응원을 안고 시작한 여행이었다. 




혼자 걸으며 외로움을 마주했던 시간


몸도 따뜻해졌겠다 씩씩하게 전동성당 쪽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전동성당은 크고 우뚝 솟아 있었다. 한 바퀴 크게 빙 두르고 나서 한옥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평일이었지만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여행하고 있었다. 한복을 빌려 입은 커플들, 친구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처럼 큰 백팩을 메고 혼자 온 여행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럴 필요 없는데도 괜히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경기전에 입장해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았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여기를 걸어 다니는 일이 즐거웠다. 


오목대 전망대에 올랐다. 지도상으로는 멀게 느껴졌지만 막상 걸으니 갈 만한 거리였다. 올라와서 한옥마을을 내려다보니 운치 있었다. 그곳에 있는 정자에 잠깐 앉았다. 사람들이 여기까진 잘 오지 않는구나, 하며 잠깐 다리를 쭉 뻗어보기도 하고 살짝 머리를 바닥에 대보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정자 마루에 기대어 나른하게 쉬어보는 건 아주 좋은 휴식이었다. 저 아래 소리가 들리는 듯 들리지 않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위에서 바라보니 아래에 내려가서도 더 잘 둘러볼 자신이 있었다.


유명한 제과점에서 빵을 사는데 근처에 가방 보관소가 보였다. 무거웠던 가방을 맡기니 한결 몸이 가뿐해졌다. 그렇게 한옥마을을 샅샅이 걸어 다녔다. 이런 길이 있구나! 하거나, 여기엔 이런 걸 파네! 하면서 걸어 다녔다. 노란 산수유를 마주쳤을 땐 얼른 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월 말인데도 반짝 추위였는지 참 추운 날이었다. 봄이 더욱 간절해졌다. 혼자 걸어 다닌 한옥마을은 외로웠다. 이 풍경을 혼자가 아니라 같이 보고 나누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먼저 내가 보게 되어, 다음에 같이 온다면 내가 더 잘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씩씩하게 거리를 걸었다.




길을 잃어 발견한 맛집


해가 질 때쯤 가방을 챙겨 한옥마을을 떠났다. 한옥 지붕이 살포시 얹어있는 전화부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길을 쭉 따라 시내 쪽으로 걸어와 숙소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숙소가 시내 쪽이라서 짐을 두고 다시 나와 번화가를 걸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전주 국제영화제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시내를 구경한 후에 또 하나의 맛집을 찾으러 떠났다. 이번엔 전주비빔밥.


전주에 왔는데 비빔밥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검색해보니 한 군데가 나와서 거기를 가야겠다 하며 스마트폰 지도에 의존에 열심히 따라갔다. 그런데 혼자 여행하는 나는 길을 결코 쉽게 찾지 못한다. 가다가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가지 못하고 다른 골목길로 갔다가 뜻밖에 유명한 맛집을 발견했다. 들어가 1인 비빔밥을 시켰다. 식당 아주머니는 "한 명이라 조금만 펐어요.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라고 하며 내 앞에 14개 반찬을 빈틈없이 펼쳐주었다. 한눈에 봐도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반찬들이었다. 과연 먹어보니 다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돌솥밥과 양푼에 비빔 재료가 잔뜩 들어간 그릇과 청국장이 나왔다.


나름 열심히 비비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내게 오더니 "이렇게 먹으면 안 돼요"하면서 내 그릇을 들고서 쓱쓱 맛있게 비벼주었다. 비빔밥을 비벼주는 식당은 처음이었다. 나에게만 친절을 베푸시는 걸까 생각했는데 나 다음으로 들어온 모녀에게도 똑같이 하는 걸 보니 이 식당의 방식이거나 아주머니의 방식인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팔힘으로 비빈 비빔밥은 최고였다. 길을 잃어 발견한 식당이었지만 놀랄 만큼 맛있는 식사를 했다.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하며 계산을 했다.


전주에서의 두 끼가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내게 전주는 맛으로 기억된다. 혼자여서 외로웠지만 먹을 때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역시, 여행 중엔 잘 먹어야 하는가 보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진리 하나를 깨우치며 첫 혼자 여행 추억을 웃으며 되새겨본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맛있는 걸 먹을 때 꼭 이걸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맛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확대가 된다. 이것도 기분 좋은 깨달음이다. 


2017, 3월의 추운 전주, 처음으로 혼자 떠난 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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