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크리스마스 (Last Christmas, 2019)
작년 11월 말에 영국 런던으로 한 주간 출장을 갔다. BBC 방문과 이머시브 공연 벤치마킹이 목적이었고 고맙게도 공식 일정은 느슨했다. 충분한 개인 일정을 가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날씨. 늦가을이거나 초겨울인 그즈음의 런던은 오후 4시면 해가 지고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나는 동절기의 런던을 처음 겪는 게 아니라서 별 아쉬움 없이 공연과 전시회 관람, 커피숍 순례와 중고 음반 디깅으로 시간을 보냈다. Foyles Bookstore 한 켠에 있는 재즈 음반 전문점 Ray's Jazz에서 장만한 빅스 바이더백과 클리포드 브라운의 CD는 가장 큰 수확이었고, 나에게 주는 한 달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어둡고 습한 겨울을 밝히고 데우는 런더너들의 치트키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Keep Calm and Have a Merry Christmas. 12월을 앞둔 센트럴은 이미 파티 전야 같았다. 2019년 홀리데이 시즌 신상중에 전광판과 이층 버스 광고판을 가장 많이 차지한 음반은 로비 윌리엄스의 <크리스마스 선물 The Christmas Present>, 영화는 폴 페이그 연출 x 엠마 톰슨 각본의 로맨틱 코미디 <라스트 크리스마스 Last Christmas>였다. 여전히 내수용이지만 여전히 국민 가수인 로비의 건재함이 반갑고, 조지 마이클의 노래 'Last Christmas' 가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도 궁금했다. 하지만 런던에서도 서울에서도 지난 겨울에 이 영화를 보진 않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서야.. 지난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지난 크리스마스를 보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상품이고 런던 지역 특산품임은 분명하나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워킹 타이틀의 전성기 시절 대표작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의 테마와 유머를 닮았고, 반전 이후 극 전체를 복기하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A Christmas Carol> 같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를 모티브로 하여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로 해피엔딩하는 로맨틱하고 힙하며 PC 하기까지 한 새로운 스크루지 스토리. 역시 멋진 Made in UK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Last Christmas'는 조지 마이클과 앤드루 리즐리가 함께 한 80's 영국 팝 듀오 Wham!의 1984년 곡이다. 벌써 한 세대도 넘게 지난 노래다. 조지 마이클은 4년 전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팬들은 중년 이상의 연배가 되었지만 노래는 계속 들리고 불린다. 이 정도면 이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