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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선 Dec 06. 2018

눈을 툭툭 감았다 뜨는 일

시간을 기억하는 법



요즘은 일부러 눈을 툭툭 감았다 뜨는 일을 하고 있다. 눈꺼풀이 힘 있게 닫혔다가 느리게 올라오도록, 묵직한 카메라 셔터가 조여졌다가 힘없이 풀리는 것처럼. 툭툭.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일이어도 힘을 까득 주고 그냥 해본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거라면 나라도 해줘야 나에게 미안하지 않지.


엊그제 엄마가 반찬을 보내줬다. 사소하게 흘린 한 마디들도 잊지 않고 기억해가며 꽉꽉 보내준 덕에 아구 수육을 깜빡해서 빼놓고 보냈다고는 하지만 꽤 큰 우리 집 냉장고가 다 차버렸다. 김치도 한 가지가 아니다. 저번 파김치 맛있다고 했더니 숨겨뒀던 마지막 파김치를 꺼내서 홀랑 나한테 보내버렸고, 여름 알타리 참 맛있게 익었더라며 조금 가져가라는 할머니 댁 밭에서 엄마는 할머니 말 안 듣고 알타리를 거의 쓸어와서 홀랑 김치를 담아서 또 까득 나한테 보냈다. 성여사 말을 좀 빌리면 가을의 메뚜기떼처럼 아빠랑 같이 가서 홀랑 다 쓸어왔단다. 거기에 오이를 기깔나게 직접 절여서 김치처럼 새콤하게 무쳐봤는데 입맛이 없으면 밥에 물 말아서 이거랑만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오이지를 또 잔뜩 보냈다. 예전에는 이런 반찬 싫었는데 요즘은 왜 이런 반찬만 그립고 계속 찾는 건지 모르겠다. 나이 든 건가....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지 싶은데 이제 막 오징어가 나와서 몇 마리 째서 오징어 젓갈을 담았단다. 그래서 햇오징어 젓갈, 첫 통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 마지막 엄청 큰 검정 봉투. 손질된 놀래미였다. 당연히 열어보자마자 말캉물컹 거리는 생물 물고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 혼자 소리 지르고 굳어 있었다. 만 19년을 꽉꽉 채워서 태안에서 나고 살다가 올라온 지 겨우 만 4년인데다가 아직도 회 뜨는 방법이 눈에 선하고 몸이 기억하는데 생선이 무서울 리가 없지만서도 너무 놀란 덕분에 열이 확 올랐다. 화가 났다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얼굴에 열이 확. 바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택배 참 빠르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엄마 큰딸 간 떨어질 뻔했다고 힝힝대니 얄미운 민지랑 엄마가 스피커폰으로 들으면서 동시에 깔깔댔다. '니가 생선구이 먹고 싶다며~' 하는데 아차 싶었다. 맞다. 자취하면서 생선구이가 먹고 싶었지만 음식물 쓰레기나 집 안 냄새, 생선 기름때 설거지까지 너무 귀찮고 복잡했다. 무엇보다 만 19년을 냉장고 안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상시 대기하던 집의 해산물 입맛이니 어디에서 싼값에 고오급 생선을 구하겠나. 20살. 대학에 와서 친구들이 게장 무한리필 집을 가자고 했을 때는 진심으로 머리 위에 빨간 물음표를 띄우고 물어봤었다. "그걸 왜 사먹어?" 그때의 나에게는 어묵볶음 무한 리필 집이나 다름 없었다. 철도 없지. 생선구이를 먹고 싶은데 사 먹으려니 또 생선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한테 전화해서 지나가는 말로 '생선구이가 먹고 싶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태안 살 때 생선구이 해놓으면 맨날 밥 안 먹고 라면이나 먹고 반찬 없다고 투정했던 것도 미안하다고 이제 와서 사과했다. 엄마, 아빠가 껄껄 웃으면서 이제라도 알았냐고 셋이 장난치면서 넘겼는데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나 보다. 아빠는 내 생각이 나서 낚시 다녀왔다는 친구들한테 생물 놀래미를 여러 마리 샀단다. 놀래미는 이름값한다. 놀라면 죽는다. 그래서 뱃물질로 잡혀도 죽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손낚시로 잡아온 자연산에 살아있는 무지막지하게 큰 놀래미들이니 비싸게 줬겠네! 싶었는데 친구 좋다는 게 뭐냐며 술 한 잔 사기로 하고 흔쾌히 주셨단다. 내려가면 인사드려야지. 종길 아저씨 땡큐. 아빠가 째서 손질까지 하고 엄마가 소금 간해서 보내온 거였다. 오는 동안 딱 맞게 됐을 테니 하나하나 물에 씻어서 봉투에 따로 넣어서 냉동한 뒤에 하나씩 꺼내서 구워 먹으면 된다고 했다. 주말 대낮부터 놀랐지만 혼자 놀래미 척척 꺼내서  물에 씻고 하나하나 잘 냉동 시켜놨다. 그리고 이미 하나 구워 먹어봤는데 태안의 맛. 믿을 구석 있는 맛이다. 아구도 바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냉동고에 들어갈 곳은 있을지 모르겠다. 바로 찜이나 수육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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