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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y 16. 2024

헴프(Hemp), 너를 지켜보겠어


  최근에 독일 정부가 '대마초(마리화나)'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18세 이상 성인은 최대 25g까지 대마초를 소지할 수 있고, 집에서 세 그루까지 재배가능하다. 또한 공동 재배모임 ‘대마초 클럽'에 가입하면 한 달에 최대 50g까지 대마초를 구할 수 있다.


  2년 전 태국 방콕에서 스타트업 멘토로 선발되어 한달살이를 할 때 너무나 쉽게 대마초를 즐기는 태국 청년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다들 좋은 집안에 교육도 잘 받고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의미 있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잠이 오지 않을 때 대마초를 피면 숙면을 해요.” 또 “대마초를 피면 기분이 좋아져 회의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술술 나옵니다 “ 와 같은 이유를 대며 수시로 대마초를 폈다. 중독이 안된다면서 대놓고 내게 대마초를 권하기도 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저녁, 스타트업 네트워킹 이벤트에 참석했는데 알고 보니 주제가 '대마초'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외국인들과 현지인들의 모습에 다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콕 거리에서도 대마 매장이나 대마가 섞인 음료수, 쿠키 등도 구매 가능하다. 태국정부가 2022년 대마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브레이킹 베드>와 <수리남>, <더 젠틀맨> 등 마약류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시청자이자 대마초가 불법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대마초 역시 ‘넘지 말아야 할 강’이라고 생각한다. 멘토링 대상이었던 태국 청년들의 권유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단호히 거절한 이유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무조건 위험한 것, 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물론 대마초가 그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약물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담배조차 손대지 않은 나로서는 어떤 형태의 환각 물질이든 시작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한 도파민 중독을 경계한다. 전 세계적으로 펜타닐로 인해 좀비도시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젠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라는 현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뉴질랜드는 대마초가 불법이다. 2020년에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찬성 48.83% Vs. 반대 51.17% 로 합법화에 실패했다. 뉴질랜드 경찰 당국에 따르면, 대마초 소지 시 500달러의 벌금형, 제조나 공급 시 최대 14년의 징역에 처한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구할 수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서핑의 도시 라글란 해변가에서 불금을 즐기는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대마초를 피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용 대마인 헴프는 합법화되었다. 단, 환자가 의료용 대마를 구하려면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시 처방전을 써줘야 하는 구조이다.   


  ‘헴프(Hemp, 의료용 대마)’는 환각성분 THC 함유량이 0.3% 이하인 의료용(산업용)으로 재배되는 대마로서 대마초와 법적으로 구분이 된다. 헴프는 CBD란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게 통증 완화, 염증 감소 및 뇌신경질환에 효과가 있어 유럽사법재판소와 UN 마약위원회는 마약류에서 제외했고, 미국, 캐나다, 일본 등 50여 개 국가에서 의료용 헴프를 합법화했다. 언론에 따르면 2033년이면 세계 CBD 시장이 50조 원 규모로 매년 20%씩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있으며 의약품, 식품, 화장품, 섬유, 건축자재, 동물사료 산업에서 그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오클랜드에 있는 헴프 매장 © 2024 킨스데이
오클랜드에 있는 헴프 매장 내 의류 코너 © 2024 킨스데이
오클랜드에 있는 헴프 매장 내 화장품 코너 © 2024 킨스데이

 

  오래전 네덜란드 출장을 다녀온 지인이 헴프차를 선물로 주었다. 마셔보니 카모마일처럼 심신이 차분하게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내가 헴프를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뉴질랜드에서도 헴프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프로틴 파우더 형태의 헴프 시드와 헴프 오일, 헴프 티와 헴프 성분이 들어간 밀키트, 빵, 무슬리, 코코아와 섞은 무슬리바 등 다양한 제품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아직 제품 수가 한정적이고 인지도 역시 낮아서 그런지 슈퍼마켓에서는 따로 모아둔 코너는 없었다. 시장 조사 차원에서 무슬리바를 구매해서 먹어봤는데 역시나 건강에 좋은 것은 맛이 없었다. 헴프 오일이나 헴프 티 정도는 구매 의향이 있지만 아직 높은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헴프 오일의 경우, 250ml에 20.7 NZD 달러 (원화로 17천 원대 초반)인 반면, 동일한 사이즈의 엑스트라 버진 오일이 11.9 NZD 달러 (원화로 9천 원대 후반)였다. 대중화가 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슈퍼마켓과 달리 헴프 아이템을 모아서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Hemp Store"가 오클랜드 시내에서 카페와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헴프 성분을 활용한 오일, 식품, 화장품과 의류 등 다양한 제품들과 책,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같이 구경(!)하러 들어온 관광객이 익숙한 듯 직원은 내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말을 걸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1997년에 오픈한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헴프 매장이라고 하니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헴프의 효과에 대해 설득되지 않은 관계로 결국 빈손으로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용 대마인 헴프에 대한 관심이 있다. 대마의 한 종류인 '삼베'로 유명한 안동시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경북산업용 헴프규제자유특구'로 선정하고 예산 464억 원을 지원해 왔다. 그 결과는 올해 11월에 특구가 종료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마트몰에 들어가 보니 헴프 시드와 수입산 헴프 오일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헴프와 관련 실질적인 기술력 및 안전성 확보, 법적 제도 정비 및 국민 인식 개선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얼마 전 파타고니아 코리아에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재배할 수 있는 천연 섬유 헴프로 만든 제품 광고를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나에게 헴프차를 선물했던 지인은 “나중에 은퇴하면 헴프를 재배하면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라며 꿈을 내비쳤다. 앞으로 우리 삶에 헴프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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