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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중 Dec 02. 2022

특허 협상 이야기 – 에피소드 24 (기술협상 준비)

기술협상 준비(1)

소송 스케줄이 확정되고 몇일 후, B사의 와타나베(渡辺)로부터 편지가 날라왔다. 

친애하는 김지훈씨, 

지난번 동경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불가피한 미국 출장으로 만나 뵙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야마구치(山口) 상으로부터 회의결과는 전해 들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소송 스케쥴이 정해졌으니 양사의 실무진은 미국 법원의 절차를 통하여 옭고 그름을 가려내는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귀하의 제안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래와 같이 제안합니다. 

1. 귀하가 제안하신 양사의 특허들은 평가하는 기술협상(Patent Discussion)은 두차례만 진행하고, 기술협상 후 2주이내에 귀사의 타결 조건을 제시

2. 기술협상은 3~4월 중 완료하고, 4월말까지는 귀사에서 타결 조건 제시/협상 

3. 기술협상 장소는 동경 B사 본사 

본 사안을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당사 경영진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실무 책임자로서 본 사안을 대화로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귀하의 제안에 공감되는 바가 있어, 어렵게 경영진을 설득해서 4월중 귀사로부터 타결 조건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귀하의 조속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Best Regards, 

와타나베(渡辺)



여러가지 제한 조건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지난번 동경출장에서 우리가 제안한 기술협상 실시를 수용하고, 촉박하기는 하지만 일정을 알려 온 것은 B사도 협상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연구소장 주관으로 TFT팀의 대책회의가 소집되었다. 

"연구지원팀장! 

B사에서 기술 협상을 하자는 우리 제안에 답을 해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연구소장이 우리 팀장에게 질문했다.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제안을 수용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판단됩니다. 기술미팅을 진행하면서, 대화로 해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팀장이 답했다. 

"B사의 조건을 모두 수용하면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협상도 전에 밀리고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기획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분 탓인지 뭔가 우리 팀의 의견에 각을 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평소보다도 더 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B사의 요구 조건을 다 수용하지는 않고, 1차 기술협상은 동경에서 하되 2차 기술협상은 서울에서 하는 것으로 제안하고, 2차 기술미팅에서 양사의 특허 평가가 완료된다는 전제하에 우리측의 타결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안하면 어떨까 합니다."

기술협상을 B사 안대로 2회만 한다고 하면, 서울에서 열리는 2차 기술 협상에서 특허 평가가 최종 완료되니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을 것 같고, 국제협상에서 홈&어웨이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니까 명분도 있고 말입니다."

우리 팀장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협상 장소만 문제가 아닙니다.

왜 우리만 조건을 먼저 제시합니까?

B사가 우리측 타결 조건만을 먼저 제시하라고 하는데 이건 자칫 우리 패만 보여주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막말로 싸움을 건 쪽에서 먼저 요구조건을 얘기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기획팀장이 계속해서 우리 팀장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기획팀장 말도 일리가 있군요.

연구팀장 말대로 기술협상을 진행하되 기술협상 후에 양사가 모두 타결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소장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자 양팀장의 의견을 조율하여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한데 기술협상 준비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연구소장이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리팀과 제품개발팀이 이미 이번부터 기술협상 준비에 착수하였기 때문에 일정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팀장이 대답하면서 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우리 회사에서 반소한 특허 2건에 대하여는 B사 제품이 침해한다는 증거인 사진과 측정된 회로 파형을 이미 확보했고, 클레임 차트도 작성이 완료되어 침해를 주장하는 자료를 만드는 것에 문제가 없고, 

B사 특허 5건중, 패널 2번 특허, 회로 2번, 3번 특허에 대하여는 독립항은 물론 종속항까지 모두 무효를 주장 수 있는 좋은 선행자료를 확보하여, 청구범위 해석 결과와 클레임 차트를 활용하여 모든 청구항에 대한 무효논리를 수립했습니다. 

문제는 패널1번과 회로 1번 특허인데, 이 두건에 대한 추가 선행기술 조사를 진행하고 미국에서 선사용 제품을 집중적으로 찾아보는 중입니다. 특히 회로 1번 특허는 우리 회사 제품과 관련성이 있는데, 회피설계안도 아직은 미진한 상황이라 무효자료 조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팀장의 말을 받아 내가 답했다. 

"회로 1번 특허 한 건이 제일 문제라는 것이군요." 

"네, 워낙 출원일이 빠르고, 디스플레이 구동에 관한 기본 내용이라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저희 회로파트에서 가능성 있는 두, 세가지 새로운 구동방식을 pilot중이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소장의 추가 질문에 제품개발팀장이 곧바로 답했다. 

"우리 제품이 B사 특허를 베낀 것은 맞다는 것으로 들리네요. 

연구소에서 우리 제품은 고유의 독자기술을 채용하여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여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결국은 B사 주장이 옳았던 거군요

이래서야 누구를 믿고 B사랑 싸울 수 있겠습니까."

기획팀장이 이제는 모두까기 인형 모드로 제품개발팀장까지 대놓고 비난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막말로 기획팀장은 지금 문제되는 특허 한번이라도 들여다 본적이라도 있어요?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는 못해 줄 망정 늘 이렇게 어깃장만 놓으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제품개발팀장이 분을 참지 못하고 기획팀장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뭔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말에 속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자자. 지금 잘 해보자고 모여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며 어쩝니까?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것만 얘기합시다. 

오늘 논의한 대로 제품개발팀에서는 기술적 대안을 빨리 마련하시고, 연구지원팀에서는 기술협상 준비를 엔지니어 부서와 협조해서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구지원팀장은 오늘 논의된 내용을 반영하여 B사에 답장을 넣어보세요.

기획팀장은 추가 의견은 없죠?" 

연구소장이 다시 분위기를 수습하며 기획팀장에게 물었다. 


"저도 잘해 보자는 취지에서 한 말인데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다른 의견 없습니다."

기획팀장이 기세를 누그러트리며 사과했다 

예상치 못한 제품개발팀장의 반격에 조금 놀란 눈치다. 


"오케이,어제도 사장님이 임원 석식 자리에서 잘 되고 있냐고 물어보십디다. 

모두 합심해서 분발해 주세요." 

연구소장이 결론을 내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Tip 24. 

국제협상은 홈&어웨이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프로 스포츠 게임이나 국가 대항전이 그렇지만, 적대적이고 복잡한 내용이 포함된 특허협상도 일반적으로 익숙한 홈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며, 시차, 음식, 문화가 다른 상대방 국가에서 진행할 때는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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