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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Sep 19. 2024

여행처럼 살 수 있다면

고흥 로컬살이... 여행지에 사는 것일까 사는 게 여행일까

‘고흥 10경’ 중 하나인 중산일몰전망대

#1

현실이 아닌 거 같은 자연 광경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잦은 날들

그림 혹은 동화 속에 놓인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의 탄성...


아직은 여행자 같은 감정이겠지. 몇 시간을 달려와 겨우 마주하던 남쪽땅의 머나먼 이국적인(exotic) 스팟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슬쩍 짬을 내어 갈 수 있는... 이제 근접한 현실이고 일상이 된 여름날에.


해 질 녘 들른 ‘고흥 10경’ 중 하나인 중산일몰전망대에서. 순천, 벌교를 지나 내륙에서 고흥반도 들어오는 초입의 서쪽 해안가에 위치하는데, 읍내 집으로 향하다가 일몰 시간이 맞아 길을 서향으로 틀었다. 저무는 태양은 구름에 가렸으나, 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또렷함과 다른 번짐, 흐릿함, 미완의 감성이 있구나... 


발을 못 떼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향했다. 


고흥 해창만 간척지

#2

계절의 변화를 바로 눈앞에서 실감할 수 있는 로컬살이.  


널찍하게 퍼진 들판의 색에서부터. 온통 초록, 풀빛이던 논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농익어가는 노란 빛깔이 섞이며, 추수를 재촉하는 형광의 컬러풀한 색감을 선사하고 있다. 읍내에서 바닷가마을로 출퇴근하며 늘 오고 가던, 해창만 간척지를 가로지른 길인데, 계절의 조명이 바뀌니 또 새로워지는구나... 천연 그대로 그려놓은 풍경화를 일상에서 본다. 벼가 더 무르익어 도달하는 완숙의 때에는 또 다르겠지.


세월은 흘러간다. 더위는 이어지고 있지만 달력은 넘어가고 이제 9월도 훌쩍 지난 때다. 이상 징후의 시절에도 좌우지간 세월은 흐른다. 가을로 향하는 전환을 온도가 아닌 들판의 빛깔에서부터 목도하고 있다. 길었던 여름의 작열도 기어이 지나감을 추수의 색으로, 흔들거리는 벼를 관통하며 불현듯 불어오는 늦은 오후의 시원한 바람을 통해 느낀다. 감상적이 된 마음에 오래전 듣던 디사운드(D’sound)를 차에서 틀었다. 


people are peple... “I am the one paddling like crazy through the night...” 

이제는 중년도 훌쩍 넘겼을, 노래 속 박제된 청아한 여성 보컬의 음색에 여전히, 다시 설렌다.


고흥 도화면 발포해수욕장

#3

고흥에는 잘 알려지진 않은 아늑하고 수려한 스팟이 많다.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 섬이 둥둥 떠있는 입체적인 고흥의 남쪽 해안선 뷰에 감탄하면서 발포해수욕장에 들어서는 순간, 뭐랄까 이 편안함, 남해안의 느린 파도와 조용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더불어 요란스러운 느낌이 없는 곳이 주는 매력을 체감한다. 동시에 ‘고흥은 새로운 발견이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정말 새로운 무언가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전하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일 것이다. 이곳은 휴가철 웅장하게 붐비는 핫플은 아닐지 몰라도,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자연 그 자체인 해변과 다도해 특유의 ‘바다+섬’ 뷰, 고운 모래가 찾는 이를 남해안의 잔잔한 물결처럼 한가로이 맞이한다. 로컬과 나만의 명소! 사실 나는 진작부터 단지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런 로컬민이 찾는 리얼한 곳에 끌리곤 했다.


바다에 들어갈 준비는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왔다. 


해변 뒤로 안락하게 숲이 우거져, 근처에 있어도, 그늘에서 바다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 더위는 사라지고 없다. 저기는 아마도 지역민들일 것이다. 돗자리 펴고 책을 보거나 바다를 차분히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삼삼오오 ‘동친’(동네친구)들 분위기 물씬 풍기며 수다와 함께 친근하게 물놀이 즐기는 무리들… 그 사이를 걷다가 숲 아래로 놓인 벤치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는다. 적당한 인파의 여유로운 웃음소리와 바다에서 전하는 서늘한 바람 소리만이 나를 건드린다. 


아, 나는, 이곳 고흥에서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는 중이다.

PS. 해질 무렵, 발포해수욕장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노을 명소' 등 어디를 찍지 않고 단지 서쪽으로 펼쳐진 가장 가까운 해안으로 왔다. 도화면의 이름 없는 바닷가 스팟이었는데(고흥은 남해안 특유의 굽이굽이 다채로운 리아스식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어, 어디서든 서쪽으로 향해있는 바닷가가 있음 일몰 보기 좋은 곳일 수 있다), 꼭 ‘일몰 명소’를 가지 않더라도 멋진 노을뷰를 선사하는구나. #로컬살이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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