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만든 유부초밥, 그리고 시아버지의 작은 김밥 이야기
젊은 시절, 휴일이면 늘 가족과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났다. 특히 회사 출장으로 다녀왔던 곳을 다시 가족 여행지로 바꿔 함께 가곤 했다. 그래서 휴일에 집에 머무는 날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집 근처를 간단히 드라이브 삼아 산책 겸 다녀오지만, 그마저도 여행이라기보다는 짧은 외출이 되어 버린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한인 마트와 집 앞 월마트를 들러 몇 가지 식재료를 사 왔다. 유부초밥 재료와 시금치, 우엉, 불고깃감이 장바구니에 담겼다. 아내는 오늘 오랜만에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자는 저녁 밥상 프로젝트를 세웠다.
우엉은 늘 김밥의 단골 재료였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한인 마트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예전처럼 고추장과 김치를 싸 가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한국 마트 못지않게 풍성하다.
이번에 산 우엉은 뿌리 네 개 단위로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아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우엉조림 전 과정을 해보기로 했다. 우엉을 다듬고 썰어 소금물에 담근 뒤, 삶아내고 양념과 함께 조려내는 과정을 차근차근 해냈다. 손수 조려낸 우엉은 빛깔도 곱고, 며칠간 김밥 재료로 두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유부초밥을 만들기 위해 당근과 양파를 곱게 채 썰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주방을 점령하며 음식을 만들고 있는 내 모습에 비하면, 아내의 손놀림은 여전히 ‘프로급’이다. 준비된 채소만으로도 유부초밥이 더욱 맛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내는 잡채까지 곁들이겠다며 시금치도 삶아두었다. 냉장고 속 재료를 보니 김밥을 말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나는 김밥 대신 꼬마김밥을 만들었다.
아내가 유부초밥을 준비한 이유는 출가한 작은아들을 위해서였다. 며칠 전 통화에서 아들이 “유부김밥이 먹고 싶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이 아내 마음에 내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싸 들고 아들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공원에서 먹으려 했지만, 아들은 아파트 옥상 정원에서 먹자고 했다. 젊은이들의 파티가 한창이던 옥상 한편에서, 우리는 소박하게 유부초밥과 김밥, 잡채를 펼쳐 놓았다.
아들은 엄마의 손맛이 담긴 유부초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는 내심 내가 만든 꼬마김밥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혹시 맛이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들과 며느리가 골고루 먹어주어 마음이 놓였다. 만약 내 김밥이 외면당했다면, 다시는 며느리와 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식사 후에는 아들의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했다. 새끼 때부터 우리가 키우다 아들과 함께 떠난 반려견인지라 더욱 애착이 간다. 반려견마저 이렇게 보고 싶은데, 언젠가 손주가 태어난다면 그 마음은 또 어떨까 상상해 본다.
돌아오는 길, 며느리가 직접 구운 바나나빵과 브라우니를 작은 용기에 담아 건네주었다. 초콜릿 바나나빵, 오트 바나나빵, 바나나 브라우니. 용기 뚜껑에는 손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빵집에서 사 온 것보다 값진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요즘 며느리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따뜻한 배려라 더욱 감동이었다.
멀리 한국에 있는 큰아들과 며느리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까이 산다면 함께 저녁을 나누며 웃을 수 있을 텐데, 거리는 언제나 마음을 가로막는다. 작은 며느리가 내 김밥을 어떤 맛으로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큰 며느리에게도 정성 담긴 김밥을 싸주고 싶다.
이제는 특별한 취미가 따로 없다. 모든 일들이 취미로 변해갔다. 음식을 만들면 그것이 취미가 되고, 산책을 하면 그 또한 하루의 행사처럼 소중한 취미가 된다. 도서관에서 글을 읽고 쓰는 일 역시 나의 취미다. 이렇게 일상의 순간들이 모두 내게는 취미가 된다. 오늘의 작은 외출과 가족의 저녁도, 그 따뜻한 풍경 속에서 또 한 편의 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