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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산 Jun 25. 2024

순천여행1-우리 아이들 좀 받아주세요

11살 큰 형, 15개월 작은 아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 살아남기


무작정 떠나 도착한 곳은 '순천'이었다. 순천으로 온 이유는 딱히 없었다. 오랜만에 도전한 랜덤 여행에서 말도 안 되게 가까운 '판교'가 걸렸다. 아침부터 모두 둘러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뽑은 여행지가 판교라니. 학교에 가는 첫째 아이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학교 가서 자랑해야 하는데, 판교라니. 바다나 계곡이라도 갈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원칙은 지켜야 한다. 여행 가방을 가볍게 싸고 유모차에 실어 출발했다. 출발하는 지하철에서 내내 입이 삐죽 나온 첫째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어디 SNS에서 한 번 스친 기억이 있는 그 지역 이름 '순천'이 뇌리를 스쳤다. 기차표를 찾아보니 겨우 몇 좌석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차편은 생각도 안 하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무계획 여행이 시작됐다.


늦은 밤 도착한 순천역은 둘러볼 것도 없었다. 11살 큰아이와 15개월 작은 아이를 데리고 먼저 잘 곳부터 찾아야 했다. 기차 안에서 숙박 예약 앱을 통해 남아있는 방을 찾아 전화를 돌렸지만,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예약이 다 찼다거나, 시스템 오류 또는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오는 전화는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서 안 된다는 노골적인 말보다는 애둘러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


딱 하나 남은 모텔, 그곳은 가고 싶지 않았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이곳마저 우리를 마다한다면 정말 갈 곳이 없었다. 순천역에서 두 돌도 안 된 아기와 노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을 받아주세요. 우리 두 부부는 손을 맞잡고 간절히 빌며 결과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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