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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이야 Jul 13. 2024

2024. 02. 08. 치앙마이 올드타운 둘러보기

사쿠라하우스


내가 이렇게 뒤늦은 태국 여행기를 쓰는 이유가 있다. 주변에서” 서유럽 간다, 동유럽 간다, 독일 간다, 스페인 간다 “는 소리를 한다. ‘좋겠다. 부럽다.’ 그래서 갈피 없는 내 마음을 다스리고자, 다녀온 지 5달이 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한다. Keep going!



방콕에서 침대 기차를 타고 13시간 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아침 공기는 가을처럼 냉랭하며 상쾌하다. 숙소는 이틀간 예약을 한 상태였다. 보통은 체크인이 오후 2시인데, 이렇게 일찍 도착했으니 어떻게 할까? 일단 가 보고 그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어, 이렇게 일찍 왔는데도 받아 주네.' 우린 황공한 마음으로 두 손으로 키를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에어컨을 켜고,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될 때까지 푹 쉬었다.


툭툭을 타고 온 이곳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집인데, 매우 깨끗하고 조용하다. 마당에선 너무나도 반듯한 모범생들처럼 꽃나무와 화초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동네여서인지 그 화초들이 권태로운 듯, 심심한 듯 보였다.


 숙소의 벽 한편에는 아담한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놓고 차와 커피, 전기 주전자, 커피잔, 유리컵, 포크, 몽키 바나나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 반대편 벽 뒤로는 빨래하기 좋게 빨래용 싱크대와 세제, 그리고 긴 빨랫줄과 옷걸이가 걸려있었다.


의자에 턱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는 서양인이 보인다. 아일랜드에서 왔단다. 아일랜드? 영국의 지배를 800년이나 받고,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그 역사가 우리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아일랜드. 그리고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나라? '더블린 사람들?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썼다는 율리시스?', '톰 크루즈와 니콜키드먼이 주연 맡은 영화, Far and Away?'


난 이 남자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의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 저 사람 분명히 영어로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왜 난 왜 이리 못 알아들을까? 우린 서로 웃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신기하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며 대화를 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아닌가? 아일랜드 사람 아닌가?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아일랜드 사람은 영어와 게일어를 쓴다는데.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의 발음을 내가 이렇게 못 알아들을 리는 없잖아.)


숙소에서 나와 좀 걸으니 예사롭지 않은 사원이 나오고 그 바로 옆에 학교가 있다. 체육대회를 하는 것일까, 운동회를 하는 걸까? 학생, 주민, 상인들, 마이크에 대고 외치는 소리. 이들의 에너지가 넘실댄다.



사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절의 이름은 올드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이라는 ’ 왓 프라싱‘이다. 태국말로 ’왓‘은 ’사원‘, ’프라‘는 불상, ’싱‘은 사자를 뜻한다. 한 블로거에 의하면 이 절에 사자 모양의 불상이 있어서 ’ 왓 프라싱‘이라고 했다.


사자 모양의 불상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여 찾아다녀 봤는데 사자처럼 생긴 불상은 못 봤다. 나중에 이해한 바에 의하면 사자는 동물 lion이 아니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불상이 있는 절이라는 뜻이다.


이 사원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황금빛 스투파, 황금빛 코끼리 상과 하늘을 향해 솟은 첨탑 모양의 건축 양식과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진 스님이라 하겠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섬뜩했다. 노스님들이 죽 앉아 계시는데, 정말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너무나 생생하게 만들어져 다가서기 두려웠다. 가까이 가면 말씀을 하실 것 같았다. 정말 너무나도 생생하게 만들어 놓았다.


거리로 나와 야시장을 돌아다니다 날이 어두워지며 길을 잃었다. 이쪽저쪽 기억을 되살리며 걷다 보니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고, 어떤 A 건물의 벽을 따라 돌아가면 되었다. 마지막으로 확인차 60대쯤 보이는 퉁퉁한 부인께 저 건물이 A 건물인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우릴 불렀다. 아무래도 우리가 못 찾을 것 같다며 숙소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사쿠라 하우스’라고 말하니, 내가 거기 안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서 리어카처럼 생긴 툭툭을 타고 왔다. 창살로 된 문을 열며 우리 보고 타라고 한다. 아니라고 우리 갈 수 있다고 하니 아니란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타라는 대로 했다. 이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데 이렇게 적극적이시니, 고맙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툭툭을 운전하는 중에 그녀는 우리 숙소에 전화를 걸어 길 잃은 양이 헤매고 있다고 했나 보다.


우린 고마워서 100바트의 팁을 드렸다. 그녀는 한번 사양하더니 씩씩하게 팁을 받고 돌아갔다. 골목으로 걷다 보니 주인이 문 앞에 나와 있다. 주인 아저씨는 우릴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그 아주머니가 엄청 고마웠나 보다. 어떻게 쫓아 오면서 까지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자기는 그렇게 못한다며 나도 그렇지 않냐며 묻는다.


아니, 나는 그 아주머니처럼 할 수 있는데.

낯선 이방인이 길을 잃고 헤매면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왜 그 한테는 있을 수 없는 감동적인 사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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