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것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진행할 때였다.
7명이나 되는 중증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아이들과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드럼을 내리치거나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공격하는 아이,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무조건 교실 밖을
뛰쳐나가려고 했던 아이 등 90분의 음악교육 시간은 나에게 너무 힘든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보조로 함께 일하는 공익근무원이 오지 않는 날은 정말 수업을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많은 특수교사들과 장애아동을 교육하는 종사자의 사례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 뺨을 맞거나
발로 차임을 당하거나, 욕을 들을 때 이 분야에서 느끼는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조절이 어렵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어쩌면 그들만의 표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는 자신이 아이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소진되는 일을 무조건 감당할 필요는 없다.
<에베쿠 발달 도구 음악치료를 만난 후 나의 변화>
에베쿠 발달 도구 음악치료를 만난 지금의 나는 장애아동의 모든 행동들이 높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아이들이 했던 무수히 많은 상동 행동, 자해와 같은 행동들이 이제는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불안하면 다리를 떨거나 엄지와 중지를 비비는 행동을 나타낸다. 장애아이들도 자신의 감정에 있어
균형이 깨지면 그 균형을 느끼고 찾기 위해 상동 행동을 한다. 그러한 아이들의 상동 행동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 상동 행동을 문제 행동이 아닌 장애아이들의 감정 발란스를 맞추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한 시각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바꿔놓았다.
아이가 상동 행동이나 자해를 하면 치료사나 교사도 불안을 느끼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행동을 의미 있게 본다. 아이가 상동 행동을 할 때마다 못하게 하는 교사와 치료사들이 있다.
나는 그 상동 행동에 맞추어 '감정 맞춤'을 해 준다. 아이의 상동 행동에 맞추어 리듬을 맞추고
그 행동이 특별한 행동으로 느껴지게 오히려 비언어적인 소리로 반영해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의미 있게 받아주는 '감정 맞춤'을 통해 부족한 걸 채우게 된다. 감정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듯이 상동 행동의 강도가 약해지거나 멈추게 된다.
'감정 맞춤'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예정이다.
에베쿠 발달 도구 음악치료를 만난 후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장애아동들이 떠오른다.
에베쿠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사와 치료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에베쿠 발달 도구 음악치료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 앞으로 관련 글을 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음악치료는 독일과 유럽에서는 유명한 발달 도구 음악치료이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알려진 치료기법이다.
한국에 있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님들, 특수교사, 사회복지사, 예술치료사들에게 이 치료도구가 알려져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